국내 형법학계가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 형법 개정시안을 내놓았다. 개정시안은 또 남성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하고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하는 등 현행 형법을 대폭 손질해 법무부의 최종 개정안 반영 여부가 주목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대표적 형법학회인 한국형사법학회, 한국형사정책학회는 10일 공개한 형법 개정시안에서 "현행 형법상 모욕죄로도 사이버상 모욕행위를 처벌할 수 있고, 현실세계보다 사이버상의 모욕행위 불법성이 더 크다고 볼 근거가 없어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개정시안은 사실상 국내 형법학계 전체의 최종 결론으로 볼 수 있어 사이버모욕죄 도입 강행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반응이 주목된다.
개정시안은 또 '부녀'로 규정돼 있는 현행 강간죄의 피해자를 '사람'으로 변경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그동안 강제추행죄만 적용 가능했던 남성에 대한 성폭행 범죄에 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강간죄를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 대상에서 빼고 제3자의 성추행을 받아들이거나 성관계를 하도록 할 경우 가중처벌하는 '성적(性的)강요죄'를 신설하는 등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사형제는 존치로 정리했고, 유기징역의 상한선은 15년에서 20년으로 높였다. 벌금액 산정은 범죄자의 1일 평균 수입을 기준으로 삼도록 했고 벌금형에도 집행유예 제도를 도입하도록 했다.
위헌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 존속과 영아에 대한 살인ㆍ상해 등을 일반 살인ㆍ상해 등보다 무겁게 처벌하던 규정은 폐지하도록 했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서 출판물의 범위에 방송과 정보통신망(인터넷)을 명시해 포함시켰다.
시안에는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에만 적용하던 간첩죄를 북한이 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로까지 확대하는 내용과 태극기 등을 훼손한 경우에 적용되는 국기ㆍ국장 모독 및 비방죄를 삭제하는 등 전향적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법무부는 11일 이들 3개 기관과 공동 주최하는'형법 개정의 쟁점과 검토'학술회의에서 이 시안을 놓고 토론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형법이 지난 1953년 제정된 뒤 세부 손질만 이뤄져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부터 대대적인 개정 작업을 진행해왔으며 내년 가을까지 최종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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