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쉬지 못하고 이어지는 공연과 아이디어 회의. 죽을 만큼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모처럼 대학로를 벗어나 찾은 한적한 바닷가.
하지만 악랄하기로 유명한 '빨간 모자' 훈련 조교들이 나타나 불호령을 내린다. "눈빛이 죽으면 안 됩니다. 힘들다고 주저 앉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지옥훈련에 들어간 37명은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앉았다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구호는 '악'이다.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고, 곳곳에서 비명이 터진다. 옆에서 한가로이 물질을 하는 백로가 미울 뿐이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우로 굴러, 좌로 굴러" "악~" 조교의 지시에 따라 기고 구르고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전방을 향해 5초간 함성을 지른다. 못마땅한 듯 조교의 채근은 더욱 강해진다. "동작 보십시오. 목소리 이것밖에 안 나옵니까.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 원하는 걸 성취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어느새 해이해졌던 정신도 번쩍 들고, 자신보다 땀과 진흙으로 만신창이가 된 옆 동료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 동안 '우리'가 아닌 '나'만을 고집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구호를 외친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파이팅!"
9일 경기 안산 대부도의 해병대 훈련장. 난데없이 SBS TV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웃찾사) 출연진인 개그맨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퍼지고 있었다. 과거 30%의 시청률을 넘나들며 전 국민의 웃음을 책임졌지만 지금은 5%대 시청률로 외면당하고 있는 웃찾사를 "다시 한번 살려보자"고 모인 정신무장의 자리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KBS '개그콘서트'(개콘)가 최근 10주년 기념방송에서 시청률 29.8%(TNS미디어 집계)로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점도 이들의 독기를 더욱 품게 하는 자극이었다.
2005년 소속 개그맨의 노예계약 파문으로 개그계를 떠났던 박승대 전 스마일매니아 사장이 최근 웃찾사 기획작가로 복귀, 기존 코너의 90%를 물갈이하는 등 웃찾사의 대대적인 개편과 재기를 위한 몸부림은 시작됐다. 진흙 범벅이 된 박씨는 "다시 돌아와 보니 뭔가 흩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며 "웃찾사의 옛 명성을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여론조사를 통해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는 코너는 바로 내리고 새 코너로 교체하면서 코너들이 명품화돼 가고 있다"며 "달라진 웃찾사를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11월까지 시청률 12%를 달성하지 못하면 웃찾사에서 자진 하차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그는 재기를 확신하고 있다.
코너 '택아' 등으로 웃찾사 전성기를 이끌었던 윤택과 김형인 등도 컴백, 부활의 선봉에 섰다. 이들은 "열심히 하는 후배들과 힘을 합쳐 전성기 때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이 어설프게 서울말을 쓰며 시청자들이 배꼽을 잡게 한 '서울나들이'의 이동엽도 "거의 매일 밤을 새며 미친듯이 개그만을 생각하고 있다"며 "웃찾사의 빠른 스피드 개그에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120㎏의 대형 고무보트 3대에 나눠 타고 대부도 앞바다를 가르는 개그맨들의 다짐이 웃찾사의 부활을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부도=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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