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욕심 많고, 믿음직스런 배우. 김선경(41)씨를 수 차례 무대에서 봐온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씨는 그를 이렇게 떠올렸다.
3평 남짓한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김씨는 소문대로 활력이 넘쳤다. "옵하! 모하고 있삼?", "내는 꼭 여서 살아야 하거든. 이 노인네 봐서 좀 부탁혀요." 그는 유행어를 쏟아내는 여대생이 됐다가, 임종을 앞둔 꼬부랑 할머니도 됐다가 하면서 능청스레 혼자 10역을 소화해냈다.
그는 8일 막을 올린 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에서 극중 다역에만 그치지 않고, 기획부터 대본, 연출까지 전부 해버렸다. 물론 작가에게 대본 검토를 받았고, 젊은 연출가 조한준(30)씨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종합예술인 뮤지컬에서는 흔치않은 광경이다. 지금까지는 배우 최정원씨가 출연작 속 노래들을 엮어 만든 뮤지컬 '비밀의 정원'과 같은 시도가 전부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1989년 데뷔 후 '맘마미아' '루나틱' 등 대·소극장을 막론하고 꾸준히 무대에 섰고, 지난해엔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크크섬의 비밀'로 브라운관을 누볐던 그다.
하지만 올해 초 뒤늦게 이혼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무얼 하며 지냈느냐고 묻자 "아팠어요. 잘 모르면서 나를 손가락질하는 세상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었고, 다 끝나버렸다고 생각했죠"라며 잠시 말문을 닫았다.
"'당신도 울고 있나요'는 제 얘기이자, 사랑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글을 잘 쓰지도, 플롯이 탄탄하지도 않지만 솔직한 만큼 관객들이 많이 공감할 것이라 믿어요." 두 달 간 매일 새벽5시까지 수정해 완성한 대본 뭉치를 내놓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러 씩씩한 체하던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울고 싶으면 휴지를 들고 산에 오르고, 으슥한 한강 변을 찾았다.
이도 저도 안되면 수도를 틀어놓고 수건을 문 채 꺽꺽 울었다고 했다. "홧병이 생기더라고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축복이라 여기자고 생각했죠. 그랬더니 살 만하던데요? 하하." 그는 관객에게 '당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당신도 울고 있나요'는 '화장을 고치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같은 노래가 각 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라디오 방송 형식을 빌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철 없는 여자, 결혼 전후 부부, 유부남을 사랑한 여자, 제비를 사랑한 돼지코 부인, 의처증으로 폭력을 일삼는 남편,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 등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1시간 30여분간 무대에는 김씨와 연극배우 장준휘씨 단 둘이 출연한다.
김씨는 이 뮤지컬에 '치유'라는 수식을 썼다. "화, 수요일 공연은 미혼모나 쉼터 여성들을 위해 무료로 해요. 제 개런티 전액을 포기하고 만든 기회죠." 공연 마지막에는 일반 관객을 무대로 데려와 직접 이야기를 듣는다. 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더 큰 위로가 된다지 않던가. 그는 이 자리에서 "상처받은 분들을 말 없이 안아드리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배우로서 2막이 시작된 것 같다"는 그는 이 작품이 끝나는 대로 뮤지컬 '건메탈블루스'에서 또 1인 4역을 맡는다. 그는 누군가를 자유자재로 흉내낼 수 있는 큰 축복을 받은 게 틀림 없다. "지금 제 행복지수는 만땅이에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발랄함이 유쾌했다. 10월 3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02)554-3357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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