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쳐 금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35세 때인 1711년 처음 금강산을 여행했다. 정선의 예술적 지지자였던 이병연(1671~1751)이 금강산 초입 김화의 현감으로 부임한 이듬해 그를 초청한 것이다.
이 여행을 통해 정선은 13면의 진경산수와 1면의 발문으로 구성된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을 남긴다. 제작 시기가 확인된 정선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인 이 화첩은 그의 초기 화풍을 증언하는 중요한 단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정선 250주기를 맞아 8일 개막한 '겸재 정선전_붓으로 펼친 천지조화'전은 '신묘년풍악도첩' 등 초기작을 중심으로 30건 142점의 정선 작품을 펼쳐놓았다.
이번 전시의 핵심인 '신묘년풍악도첩'은 하늘을 나는 새의 시점을 빌려 금강내산 전체를 조망한 '금강내산총도'에서 출발해 정선의 여행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단발령망금강산도'는 정선 일행이 단발령에서 구름 너머 금강산을 처음 대면하는 장면을 그렸고, 내금강 초입의 사찰을 그린 '장안사도'는 산 속으로 접어든 화가가 느낀 현장감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선정도'에서 오른쪽 위에 작게 그려졌던 바위 문암은 '문암관일출도'에서 다시 별도의 그림으로 확대된다.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이 반복되는 듯하다.
'신묘년풍악도첩'은 정선 만년의 금강산 그림에 비해 조형적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러나 금강산의 기기묘묘한 풍모를 처음 만난 화가의 흥분과 거기서 얻은 예술적 영감, 그리고 화법 수련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있기에 그 의미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전시실 맨 앞자리를 차지한 '북원수회도첩(北園壽會圖帖)'은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는 정선의 풍속화다. 정선이 갓 벼슬길에 오른 41세 때 그린 이 작품은 공조판서를 지낸 이광적의 과거급제 60주년을 맞아 북악산과 인왕산 기슭에 살던 70세 이상 사대부들이 모여 장수를 자축한 모임을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 작품으로, 풍속화가 정선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물관이 개인 소장자에게 빌려와 처음 일반에 공개하는 '비로봉도'(연대미상)는 이번 전시에서 반드시 챙겨봐야 할 작품이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이 뭉게구름처럼 하늘로 오르고, 주위의 암봉인 중향성은 비로봉을 떠받든 듯 도열해있다.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파격적인 구도의 이 그림에 대해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에서 "비로봉의 웅대함과 개골산 만 이천의 신비로운 봉들을 이처럼 신나게 단폭의 화면에 구성한 그 상상력은 금강산의 크고 장엄함을 너무나 올바로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감의 세계"라고 극찬했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볼 수 있던 그림이기에 실물 앞에서의 감동이 더 크다. 무량수전>
여러 그림이 하나로 묶인 화첩의 특성상 날짜에 따라 전시작이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독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있다가 2006년 왜관수도원으로 반환된 '겸재 정선 화첩'은 10월 13일부터 전시되고, 간송미술관 소장 '청풍계도'와 '금강내산총람도'도 2주일씩 번갈아 나온다. 전시는 11월 22일까지.(02)2077-900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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