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확 바뀌고 있다. 일본에서는 54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올 초에는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최강대국에서 잇따라 정치혁명이 이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슬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정권이 바뀌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정치체제 변혁이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 뿌리는 대공황에 가까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가 정권교체 도미노 현상을 몰고 온 것이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난국은 영웅을 만들어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 대표 등은 난국이 만든 스타들이다.
급변하는 지구촌을 보면서 15년 전 영국의 풍경이 떠올랐다. 1994년, 영국 보수당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을 때 야당인 노동당의 존 스미스 총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선장을 잃은 노동당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이가 토니 블레어였다. 당시 블레어는 41세에 불과했다. 블레어는 조그만 노동당 클럽에서 가진 총재 출마 연설을 통해 노동당 현대화를 약속했다.
"이제는 닐 키녹과 존 스미스(이상 전 노동당 총재)가 시작한 여행을 마무리하고 항의의 정치에서 통치의 정치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 오랜 야당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영국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국민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영국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블레어가 간곡하게 노동당의 변신을 호소하자 그 자리에 참석한 당원과 일반 시민들은 기립해 박수를 쳤다. 일부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블레어는 좌파에서 오른쪽으로 몇 클릭 이동시킨 노선을 내걸어 전통적 좌파를 고수하는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총재가 됐다.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총리가 됐다.
다시 우리 야당을 돌아보게 된다. 민주당 등 야권은 소용돌이 시대를 맞고 있다. 야권의 두 축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여권의 변화 모색 등 모두가 야권에게는 새로운 환경이다. 40여년 동안 민주개혁 진영을 이끌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정치적 공백을 빗대 포스트 DJ 시대란 얘기도 나온다.
포스트 DJ를 꿈꾸는 야권의 지도자는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제시했던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새 시대의 야권 지도자는 우선 새로운 비전과 정책 노선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도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투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물리적 투쟁을 지양하고 정책 대안을 내놓고 여당을 몰아붙일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야 한다. 북한 정국이 급변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정책을 펼 수 있는 안목도 키워야 한다.
강력한 투쟁이 야권 지도자의 첫째 요건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도덕성과 용기 그리고 정책 능력을 갖춘 야당 정치인이라면 큰 꿈을 가져볼 만하다. 기본 자질을 갖추었다면 민심을 잡을 수 있는 가치와 노선을 개발하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야권의 꿈나무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웅'이 출현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스타는 과거 지도자들의 공과 중에서 지역주의, 권위주의 같은 그림자는 버려야 한다. 새 영웅을 기다린다.
정치부장 김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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