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바닥의 모래며 지붕을 뒤덮는 무성한 단풍잎까지, 극장 안에 가을의 정취가 가득하다. 곧 쓰러질 것 같은 그 산골집에서 옹기종기 젊은 부부가 젖먹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신생 극단 해인의 첫 무대 '별방'은 산골의 단칸집을 무대로, 잃어버린 가치를 불러낸다. 어려서 시골서 자라난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환상을 무대에 실재시킨다.
막 박사 학위를 딴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50대의 사장이 어느 가을날 무엇에라도 홀린 듯 어린 시절을 보낸 산골 마을을 모처럼 찾는다. 퇴락한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자신의 아련한 과거와 만날 수 있었다. 마을 뒷산 어딘가에 있는 동굴은 이를테면 시간의 통로인 셈이다.
연극은 환상과 현실을 천연덕스레 병치시켜 놓는다. 그 동굴을 통과하면서 현재부터 1952년까지의 시간을 거슬러 간다는 가정으로부터 무대는 도출된다. 중년남은 순박한 산골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던가를, 가난이 그들을 얼마나 옥죄었던가를 똑똑히 목격하게 된다. ,
제목은 작·연출자 이양구(34)씨의 고향인 충북 단양군 영춘면 별방리에서 나왔다. 이씨는 "가족, 인간, 자연이 근대화와 수몰에 의해 와해되는 광경을 지켜 봤다"며 "이 무대가 근대화의 어둠, 해체돼 가는 가족관계를 돌아다보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의 고향 마을이 겪은 운명처럼, 극중의 산골 마을 역시 개발에 밀려 수몰된다. 27일까지 연우소극장.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 7시, 일 오후 4시. (02)764-7462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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