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캐나다 캘거리의 스탬피드 파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폐막식. 16번째 종합우승의 쾌거를 이룬 한국 선수단의 당당한 행렬 속에서 나란히 어깨를 겯고 걷던 두 젊은이가 '찡긋' 눈빛을 교환한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요리 부문 금메달을 딴 박성훈(19)씨와 레스토랑 서비스 부문에서 4등상인 우수상을 받은 박청운(22ㆍ8월18일자 보도)씨. 태극마크를 달고 전 세계 기능인들과 '황금손'의 실력을 겨룬 이들은 부모가 모두 요리 기능장인 '요리 가족'의 의좋은 형제다.
"형이 축하한다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을 때 가슴이 뭉클했어요. 형도 굉장히 잘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동생 성훈씨는 폐막식 직후 전화 통화에서 형 얘기부터 꺼내며 "금메달을 따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서운하다"고 했다. "그래도 형이 내색하지 않고 축하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두 형제는 대회 기간 내내 같은 방을 쓰면서 의기를 다졌다. 한 방에서 자고 대화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 수 있었던 게 좋은 성적을 내는 데도 도움이 됐다. "제가 경기할 때 동생도 바로 앞에서 과제를 치르고 있었어요. 흘깃흘깃 바라보면서 서로 무언의 응원을 했죠."(형) "제 경기를 치르면서도 형이 멋지게 테이블 서빙을 하는 걸 보면 가슴이 벅찼어요. 기운이 저절로 나더라고요."(동생)
두 형제는 한국조리아카데미 원장인 아버지 박희준(46)씨와 백석대 외식사업과 겸임교수인 어머니 홍영옥(46)씨 밑에서 자연스럽게 요리와 레스토랑 문화를 익히며 자랐다.
성훈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 직업 탐방 과제를 하다가 요리에 푹 빠지게 됐다. "식자재가 이런 저런 요리로 뚝딱뚝딱 변신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그때부터 아버지 연구소에 나가 요리를 직접 해보기 시작했죠."
충남 천안의 병천고 조리과를 졸업한 성훈씨는 2007년 제42회 전국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아버지도 86년 같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배. 하지만 그는 3수 만에 금메달을 따 국제대회 나이 제한에 걸려 아깝게 은메달리스트에게 출전을 양보해야 했다. 아버지 박씨는 "금메달을 따고도 국제대회에 못 나간 게 한이었는데 아들이 그 한을 풀어줬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해외유학 한 번 안 한 토종이 서양요리로 유럽과 미주 선수들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으니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국가대표가 된 성훈씨는 올 2월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이 최고등급인 '쓰리 스타'를 매긴 곳으로, 국내에서 서양요리를 배우며 느낀 갈증을 풀기 위해 성훈씨가 선택한 대안이었다.
8개월간 성훈씨를 지도한 피에르 가니에르의 총책임자 봉준호 조리과장은 "이렇게 기본기가 잘 돼 있는 친구는 처음 봤다"며 "하나를 가르쳐주면 셋을 알 정도로 감각이 빠르고 스킬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성훈이는 단순한 대회용이 아닙니다. 실제 식당에서 요리를 해도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는 뛰어난 요리사예요."
성훈씨는 "앞으로 꾸준히 요리 공부를 계속해 우리나라 조리업계에 이바지하고 싶다"며 "서양요리를 전공하는 만큼 해외유학도 꼭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호텔은 성훈씨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한국은 이번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총 40개 부문에 45명이 출전, 금메달 1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 우수상 11개를 획득했다. 기능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요리 직종에 이어 전자계측장비와 공업전자기기 직종에서도 1979년 첫 대회 이후 30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하사로 복무하는 허영환(20)씨가 현역 군인으로는 79년 타출판금 종목 우승 이후 처음으로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2001년 서울 대회 이후 5차례 선수를 내보낸 타일 직종에서도 김정구(19)씨가 처음으로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으며, 모바일로보틱스에 출전한 국내 최연소 선수 최문석ㆍ김원영(17ㆍ서울로봇고ㆍ3월30일 15면 보도)군도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1967년 제16회 스페인 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총 16회의 종합우승을 거머쥔 한국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끊겼던 연승행진의 기록도 이어가게 됐다. 한국은 1995년 프랑스 대회부터 2003년 스위스 대회까지 5연패를 달성하며 기능강국의 위상을 과시했으나, 2005년 핀란드 대회에서 그 맥이 끊겼다가 2007년 일본 대회에서 다시 1위를 탈환했다.
기능올림픽은 2년에 한 번씩 만 22세 이하(통합제조 및 메카트로닉스는 만 25세 이하) 젊은 기능인이 실력을 겨루는 국제대회. 국내에선 금메달 수상자에게 5,000만원의 상금과 금탑산업훈장 수여, 군 면제 등의 특전이 주어진다.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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