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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주년 기념 '지금 장미를 따라' 펴낸 시인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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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주년 기념 '지금 장미를 따라' 펴낸 시인 문정희

입력
2009.09.0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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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나이가 있지만, 시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등단 40년에 대한 개인적인 감회보다는 굴곡 많았던 역사를 시인으로서 겪고 '살아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솔직하고 활달한 언어로 여성의 주체적 삶에 대한 갈망을 노래해온 문정희(62) 시인. 등단

40년을 맞아 130여편의 시를 추린 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뿔 발행)를 낸 그는 "늘 새로운 감각을 찾으려 하고 끼도 넘친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자리에 앉게 해주고 나를 지켜준 것은 시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가 정식 등단한 것은 대학 4학년 때인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다. 하지만 그는 이미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진명여고 3학년 때 시집 <꽃숨> 을 내기도 했던 유명한 '문학소녀'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는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하고, 교육받은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늘 그 앞자리에 서 있었다.

"한국 여성들에게는 1970년대가 한 에포크라고 생각한다"고 돌아보는 문씨의 당시 시들에는 여성을 금압하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저항의 언어들이 펄떡거리고 있다. '나는 밤이면 몸뚱이만 남지// 시아비는 내 손을 잘라가고/ 시어미는 내 눈을 도려가고/ 시누이는 내 말(言)을 뺏아가고/ 남편은 내 날개를/ 그리고 또 누군가 내 머리를 가지고 달아나서/ 하나씩 더 붙이고 유령이 되지….'('유령'∙1973) 결혼과 함께 자기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여성들의 삶의 조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은 그를 시에 매이도록 한 원천이었다.

생명 탄생의 찰나를 포착한 '꽃 한송이'와 더불어, 그의 시 가운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1997) 역시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내 시의 원천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해요. 큰 틀에서 보면 나의 생명을 억압하는 것에 대한 자유의식의 발로가 이런 페미니즘 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존재의 자유로움에 대한 시인의 갈망은 페미니즘 시로 꽃피기도 했지만 '마감뉴스'(1995)나 '딸아, 미안하다'(2004) 처럼 정치∙사회적 정의가 부재했던 우리 현대사에 대한 관심으로 화하기도 했다. "투옥되는 등 현장에 있던 시인들에 대해 늘 부채감이 있지요. 그래도 비록 현장에서 구둣발 세례를 받고 뺨을 얻어맞지는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 저항했다고 생각해요. 권력 쪽에 서지 않고 늘 시 쪽에 서 있었다는 것이 제 자부심입니다."

고교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1970년대 중반에는 연극배우로 나섰으며, 80년대초에는 불현듯 미국 뉴욕으로 떠나 종교교육학과 예술고고학을 공부했고, 90년대 초에는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끼'에도 불구하고 그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시. 그에게 시란 무엇일까? "조숙했는지 어린 시절부터 삶이 지루하고 덧없다고 느꼈어요. 오로지 시만이 싫증이 나지 않았지요. 역설적으로 말해 시 앞에서 저는 늘 '미숙아' 이고 '처녀' 였어요. 시는 저를 늘 절벽 끝에 서있게 했지요."

동국대, 고려대 교수 직을 그만두고 올해 '전업 시인'이 된 문씨는 "이번 시집은 40년을 의미해 나왔지만 아직 내게는 무의미한 것 같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같다"고 말했다.

이왕구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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