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리버풀 스트리트역에 구식 증기기관차 한 대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들어섰다. 기차에는 백발이 성성한 24명의 노인과 그 가족 17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마중 나온 한 노인과 감격의 해후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나치 독일이 점령했던 옛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기차 편으로 유태인 어린이 669명을 영국으로 탈출시킨 올해 나이 100세의 '영국의 쉰들러' 니컬러스 윈튼의 선행을 재현하는 행사였다.
유럽에 전운이 감돌던 1938년 겨울, 런던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던 니컬러스 윈튼은 스위스로 스키여행을 떠나기 직전 인도주의 활동을 벌이던 한 친구로부터 "체코슬로바키아의 유태인 어린이들을 열차로 탈출 시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망설임 없이 제의를 수락한 윈튼은 프라하로 가 1939년 초 특별열차를 준비했다. 프라하를 출발해 나치 독일과 네덜란드를 횡단하고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1,120㎞의 대장정이었으며 윈튼은 어린이들을 받아줄 가정까지 미리 수배해 뒀다.
윈튼이 마련한 특별열차는 9차례 운행됐으나, 마지막 기차는 1939년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나치 독일군에 의해 제지됐다. 탑승한 유태인 어린이 250명은 강제로 끌려가 거의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후 윈튼은 이런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어 왔으나, 1988년 부인이 우연히 다락방에서 당시 특별열차에 탔던 어린이들의 명단과 사진을 발견하면서 '자유의 탈출극'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윈튼은 이런 인도적인 업적으로 2002년 12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고 지난해 체코 정부에 의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당시 열차에 몸을 실어 목숨을 구한 마리아네 월프슨(85ㆍ미국 거주)은 "16세 이상은 태우지 않았는데, 나는 15세여서 겨우 탔다"며 "남겨진 부모는 강제 수용소에서 숨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기념열차는 1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떠나 70년 전과 동일한 코스를 달려 사흘 뒤에 런던에 도착, '생명의 은인' 윈튼을 만났다. 윈튼은 "그 때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열차에 태우고 싶었다"며 "죽기 전 많은 아이들과 재회하게 돼 정말 감격스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이야기는 슬로바키아에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과 '사랑의 힘: 니컬러스 윈튼'이라는 두 영화로 상영됐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