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내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대선주자로 거론됐던 충청지역 인사라는 점에서 차기 대선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화폐와 금융, 통화정책에 정통한 경제전문가를 내각의 수장으로 내세운 것을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정 내정자는 본질적으로 경제 총리이다.
그는 32년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직을 지켜온 학자이면서 평소 우리 경제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규제 완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등 소신 발언을 펼쳐왔다. 이 때문에 경제철학이 다른 정 내정자의 MB정부 합류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야권에서는 "한복 바지에 양복 상의를 입은 격"이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여권 내부에서도 정 내정자의 총리 지명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 정부가 표방한 중도강화론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중도실용주의 노선인 정 내정자의 발탁을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은 아니다. 경제계에서는 정 내정자가 중도적 성격을 띠면서도 소신 발언을 하는 스타일이어서 어느 한 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합리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애제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정 총리 후보자가 부유층만을 위한 경제정책에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최근 정부의 노선 변화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내정자 앞에는 집값 급등과 고용 악화, 후진적 노사관계 등 당면 현안이 만만치 않다. 유동성 흡수를 위한 출구전략 시점도 당장 고민해야 할 과제다. 새 내각이 진정한 중도실용 내각이 되려면 재벌과 부유층에 편중됐던 정책을 바로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경제 총리로서 현 정부의 모자랐던 부분을 메우고 보완하는 역할에 충실해주기를 기대한다. 소신을 접고 '얼굴 마담'에 그치느냐, 정책 편중을 균형 있게 되돌릴 수 있느냐는 오로지 그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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