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 오후 9시께 구로역으로 향하는 52번 시내버스 안. 인도 출신의 보노짓 후세인(28)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30대 초반의 한국인 친구 한모(여)씨와 함께 좌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10명 남짓한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 뒤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아 더러워. 이 개XX야!" 후세인 교수는 뒤를 돌아봤다.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30대 초반의 남자가 후세인 교수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 나는 XX야!" 그가 술에 취한 듯 보여 후세인 교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웨어 아 유 프럼(Where are you from)?"이라며 영어로 묻고, 이어 "유 아랍, 유 아랍(You Arab, you Arab)!"이라며 놀리듯 말했다. 참다 못한 후세인 교수가 "뭣 때문에 그러냐"고 영어로 물어도 그는 "유 아랍"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옆에 있던 한씨가 "왜 그래요"하며 따져 묻자 그는 되레"넌 뭐야? 조선X 맞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 남자는 급기야 후세인 교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들며 영어 욕설을 했다. 한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옷깃을 잡고 경찰서에 가자고 요구하자, 그는 한씨의 종아리를 발로 걷어차고 욕설을 퍼부었다.
버스기사가 부천 중부경찰서 근처에서 이들을 내려줄 때까지 승객 대부분은 이를 지켜만 봤다. 40대 여성 한 명만이 "그만 하라"며 남자를 말렸고 "증인이 되어 주겠다"며 경찰서로 따라 나섰다.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은 이 같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회사원 박모(31)씨를 형법상 모욕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현행법 상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규정이 없어 일반 모욕죄로 기소됐지만, 인종차별 발언이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후세인 교수의 법률지원을 담당한 공익변호사 모임 '공감'의 황태기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검찰이 인종차별 발언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지금까지 인종주의를 묵인해왔던 사회적 인식에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를 모욕죄로 고소한 후세인 교수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 및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후세인 교수는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항상 참아왔다. 한번은 졸다가 버스 종점까지 갔는데, 버스기사가 발로 툭툭 차며 깨운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후세인 교수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우리가 합의를 거절하자 박씨가 따라다니며 계속 폭언을 퍼부었지만, 경찰은 보고만 있었다"며 "내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박씨를 처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백인과 비백인을 차별하는 이중적 인종 잣대에 대해 한국인들이 생각할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후세인 교수는 또 한국 법체계 상 인종차별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아 이번 사안이 개인적 모욕으로 다뤄졌다며 관련기관이 제도를 개선하도록 인권위에 진정서도 제출했다.
공감의 한 변호사는 "우리도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만큼, 외국인을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는 관행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세인 교수는 인도 델리대학에서 현대사를 전공한 뒤 2007년 초 성공회대 아시아비정부기구(NG0)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이듬해 졸업과 동시에 연구교수로 임용됐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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