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 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다소곳하게 옆으로 돌아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소녀의 머리 위에 앉은 새 한 마리까지, 파스텔빛의 화면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한국적인 감성으로 사랑받는 화가 박항률(59ㆍ세종대 교수)씨의 그림은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관저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한국 대사관에 그의 그림이 걸려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박씨의 개인전 '내면의 응시'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특유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그림들이 걸렸다. 100~200호의 대작 10여점을 포함한 신작 40점뿐 아니라 1970~90년대의 작품과 조각도 함께 나왔다.
구긴 한지에 아크릴 물감을 묻혀 캔버스 위에 찍고,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붓으로 물감을 뿌리고, 다시 세필 작업을 해서 완성되는 그의 그림은 독특한 공간감을 풍긴다. 인물들은 대부문 옆 모습이다. "정면이 1인칭이라면 측면은 3인칭이라고 한다. 아련한 추억 속 인물을 그리는 것이기에 측면이 많은 것 같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그림 속 여인들은 어렸을 때 가까이 지내던 사촌 누이동생과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서울 출신인 그는 고교 1학년 때 1년간 경북의 시골에서 '귀양' 생활을 했다고 한다. "만화나 베끼고 있는 아들을 못마땅해한 부친의 뜻이었죠. 그 때 문학소녀였던 사촌 누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곱사병을 앓고 있던 누이는 결국 3년 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순수한 얼굴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1991년 첫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그는 이번 전시에 맞춰 네번째 시집 <그림의 그림자> (시작 발행)도 선보였다. 여중 교사 시절 제자의 권유로 시를 쓰게 됐다는 그는 "시를 쓰면서 과거 그림을 돌아보게 됐고, 추상에서 지금의 그림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집 첫 머리에 "오늘도 붓끝으로 시를 그린다. 간혹 그림이 시가 되기를 혹은 시가 그림이 되기를 바라면서…"라고 썼다. 27일까지. (02)720-1020 그림의>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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