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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그녀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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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그녀가 결혼했다

입력
2009.09.0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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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8월 30일 아침 5시 58분 07초에 가을이 왔다. 어둠은 물러가면서 무더위, 습기, 후회, 빗나간 사랑 등 여름의 모든 것들도 한꺼번에 가져갔다. 그리고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햇살과 함께 가을이 왔다. 월요일이었고, 대학의 개강 일이었다. 한꺼번에 가을이 오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그 여름의 끝에 이영애가 결혼했다. 그녀를 대신한 법무법인의 간략한 발표문 뒤로 그녀는 홀연히 떠났다. 비로소 사람들은 한국도 미국 못지않은 총체적인 법률서비스 시대에 들어선 걸 알았다. 이제 변호사는 법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사적 영역의 일까지 대신할 수 있는 고급의 서비스 직종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우아한 이미지 무너뜨려

법무법인의 발표가 익명으로 남겨둔 그녀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언론은 그의 이름을 밝히는 데서 오는 법적인 부담을 네티즌들에게 넘겼다. 거대 포털의 댓글 란은 급속히 닫혀져 갔지만 네티즌들은 그 이상으로 집요했다. 이 새로운 인터넷의 시대에 언론과 네티즌은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릴린 먼로보다는 그레이스 켈리였다. 그녀는 '산소 같은 여자'의 도시적 청량함으로 어느 날 나타났다. '장금이'로는 한국적인 지혜와 여성스러움을 아시아 전역에 과시했고,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는 분명한 영어 발음의 스위스 출신 유엔군 장교로 나왔다. 그녀는 남성들의 공간인 JSA 속의 유일한 여성이었고, 연약함과 강인함을 긴밀하게 교차시키며 세련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그녀의 이미지를 확립시켰다. <친절한 금자 씨> 의 일탈도 그녀가 쌓아둔 우아함을 무너뜨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광고에서 그녀는 언제나 품위 있고, 우아했으며, 도시적이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차갑기까지 했다. 그녀는 확실히 많은 여성 스타들이 갖고 싶어 하는 섹스 어필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어디에서도 그녀는 남성과 함께 잘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항상 혼자서 세련된 도시의 불빛 속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왕과 결혼함으로써 그녀의 배우 경력 내내 지켜왔던 우아함과 고고함의 정점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영애도 그렇게 고고하고, 비일상적이며, 화려한 결혼을 할 것으로 믿었다. 법무법인을 통해 전달된 그녀의 결혼 발표가 대다수 그녀의 팬들에게 당황스러웠던 건 이 때문이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1대 다(多)로 대응하는 관계이다. 스타는 자신의 인생을 살지만 팬들은 스타와 함께 살아간다. 스타는 팬을 모르지만 팬들은 자신들이 동경하는 스타를 이웃집의 누나보다도 더 잘 알고, 거기에 자신의 삶을 투사한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에게 '우아하고, 고상하고, 칭찬하고 싶은'가까운 어떤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밤 갑자기 마을을 떠난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소문으로는 어느 남자와 먼 곳으로 가서 결혼을 했다고 한다.

팬들의 허탈감은 정당

그녀를 동경하고, 좋아하던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이 부분에서는 아주 정당하다. 가까운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듣지 못했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 이와 유사하다. 팬으로서 오랫동안 그녀에게 보낸 애정이라면 우리도 최소한 그녀가 누구와 언제, 어디서 결혼하는지 정도는 통보 받을 권리는 있는 것이다.

영화 <노팅 힐> 에서 세계적인 스타 줄리아 로버츠는 런던 변두리의 책방 주인 휴 그랜트 앞에서 울먹이며 말한다. "이 순간 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는 한 명의 여자일 뿐"이라고. 사랑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진실하다. 자신의 사랑을 더욱 더 소중하게 가꾸는 길은 그 사랑 앞에 당당해지는 것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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