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부엌 서랍이나 냉장고를 열어 보자. 포장은 뜯었는데 다 먹지 못한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이 하나쯤은 눈에 띨 것이다. '맞아, 지난 번에 맛있게 먹었던 거지' 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뜯은 상태로 오래 보관한 음식이 애초와 같은 맛을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손이 잘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가슴이 아프다.
이런 경우에 딱 맞는 팁 하나. '먹다 남긴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도 창조적 아이디어와 넘치는 정성만 있으면 엄청난 '가정표' 요리로 재탄생할 수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요리 블로거 3명으로부터 '남은 인스턴트식품과 가공식품을 활용하는 DIY 요리법'을 배워 봤다.
● 병 커피로 빚은 보드라운 쿠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김보은(26·여)씨 집 부엌. 보통 가정집에 하나도 있을까 말까 한 오븐이 4개나 된다. 빵가게 하시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에 그는 "우리 딸이 어려서부터 요리를 좋아하는데 자꾸 사자고 고집을 부려서…. 그래도 뭘 하든 다 쓰긴 써요. 우리 딸은 냉장고에 재료가 좀 남았다 싶으면 혼자 뚝딱뚝딱 해서는 그럴 듯한 요리를 만들어 내요. 신기하죠."
김씨는 최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요리 강사로 나섰다. 직접 운영하는 요리 블로그가 인기를 모으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올해 안에 첫 요리책이 나올 예정이다. 당찬 20대다.
블로그에서 김씨는 봉식이란 이름을 쓴다. 성격이 덜렁대고 털털해서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들 부른다고 한다. 그래도 요리에 쓸 재료를 다루는 손놀림만은 섬세하고 꼼꼼했다.
봉식이가 직접 만들어 준 요리는 '커피 쿠키'. 가정마다 하나씩은 있을 법한 인스턴트 병 커피를 이용했다. 타 마시기 편한 커피믹스에 익숙해지다 보니 병 커피엔 손이 잘 안 가는 게 사실이다. 그는 부엌에서 수납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병 커피를 꺼내 밀가루 버터 설탕 계란 꿀을 넣어 '봉식이표' 커피 쿠키로 변신시켰다.
완성된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자 인스턴트 커피의 익숙한 향이 그대로 살아난다. 시중에서 파는 쿠키처럼 부담스럽게 달지도 않다. 그는 "요즘 인스턴트커피는 맛이나 카페인 양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나와 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선택해 쿠키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봉식이표 커피 쿠키 만드는 법
▲인스턴트 커피에 미지근한 물과 꿀을 넣고 잘 섞어 커피 물을 만든다
▲실온에 둬 말랑말랑해진 버터를 거품기로 잘 저어 크림처럼 만든다
▲버터에 설탕과 계란 노른자를 넣고 잘 섞는다
▲버터에 꿀을 넣은 커피 물을 붓는다
▲밀가루(박력분)를 체에 걸러 여기에 넣고 주걱으로 칼질하듯 끊어서 반죽한다
▲반죽을 쿠키 모양으로 만들어 예열된 오븐에 약 15분 간 굽는다
● 시리얼 덮어쓴 아삭아삭 파이
인터넷에선 요안나로 알려진 이혜영(49)씨는 1남 1녀를 둔 전업주부다. 요리 블로그를 운영한 지 1년 반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미 홈쇼핑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한 뉴스 프로그램에는 매일 그의 요리법이 소개된다. 올 가을이면 책으로도 나온단다.
"아이들이 호두파이를 즐겨 먹어요. 엄마니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바삭바삭하고 맛있는 파이를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시리얼을 얹어 봤죠. 그게 대박이었어요. 아이들이 매일 달래요. 먹어본 주변 사람들도 아예 가게 하나 차려서 팔아 보는 게 어떠냐고 하네요."
시리얼 하면 흔히 우유에 타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씨는 이 고정관념을 깼다. 시리얼을 밀가루 반죽 위에 뿌린 것이다.
"시중에서 파는 호두파이보다 훨씬 바삭바삭하고 고소해 아이들 간식거리로 좋아요. 파이에서 시리얼 씹는 느낌이 나니 색다르죠."
'요안나표' 시리얼 파이를 만들려면 밀가루 버터 소금 계란 호두 꿀 계핏가루가 필요하다. 시리얼은 초콜릿이나 과일 맛 등이 가미된 것 말고 담백한 곡물 맛이 좋다.
요안나표 시리얼 파이 만드는 법
▲체 친 밀가루(박력분)에 버터를 넣고 섞어 보슬보슬하게 만든다
▲계란을 넣고 손으로 재빨리 반죽한 뒤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둔다
▲30분 뒤 반죽을 꺼내 밀대로 평평하게 민다
▲납작한 틀에 모양을 맞춰 올리고 구울 때 부풀어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포크로 구멍을 송송 낸다
▲프라이팬에 꿀 버터 계핏가루를 넣고 2분 정도 끓이다가 호두를 넣고 섞은 뒤 불을 끈다
▲시리얼을 붓고 부서지지 않도록 잘 섞는다(시리얼에 꿀이 골고루 묻어야 구울 때 타지 않는다)
▲이를 틀에 얹은 반죽 위에 올리고 예열된 오븐에서 약 30분 간 굽는다
● 용돈도 아끼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마지막 한 명의 블로거는 좀처럼 연락이 닿질 않았다. 하루나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했는데 소식이 騙?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때 드디어 답장 메시지가 왔다.'학교에 갔다 집에 막 와서 이제서야 메시지를 봤네요.'
최나영(15)양은 학생이다. 그것도 중3.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텐데 최양의 블로그는 온갖 식품 관련 정보들로 가득하다.
블로거 활동이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글이나 사진은 주로 주말에 1주일 분량을 미리 준비했다가 평일엔 차례차례 인터넷에 올리기만 해요. 나름대로 시간을 분배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성적이 오르던데요."
최양의 꿈은 영양사다. 영양이나 식품 관련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요리 아이디어도 생긴다. 한 예가 '하루나표' 크림치즈 아이스크림. 집에 남아 있는 크림치즈에 설탕 우유 생크림 꿀 레몬즙만 준비하면 전문점 못지 않은 맛의 아이스크림을 돈 안들이고 즐길 수 있다.
최양은 인기 블로거답게 요리법에 일가견이 있다. "아이스크림을 마지막에 얼릴 때 냉동실에 넣고 1, 2시간마다 섞어 줘야 하는 이유는요, 사이사이에 공기가 잘 들어가게 해 주는 거죠. 그래야 아이스크림이 한층 가볍고 부드러워지거든요."
하루나표 크림치즈 아이스크림 만드는 법
▲크림치즈를 주걱으로 부드럽게 풀고 설탕을 넣어 잘 섞는다
▲느끼한 냄새를 없애고 깔끔한 맛을 내고 싶으면 레몬즙을 살짝 넣는다
▲우유와 생크림을 섞어 80도 이하의 온도로 끓기 직전까지 데운 다음 식힌다
▲풀어둔 크림치즈에 미지근하게 식은 우유를 조금씩 넣어 가며 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섞는다
▲묽어지면 꿀을 넣고 다시 섞어 준다
▲아이스크림 제조기에 넣고 돌린다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없으면 냉동실에 넣고 1, 2시간 간격으로 꺼내 살짝 섞어 주면서 얼리면 된다
■ 소비자표 가공식품 요리, 업계도 환영
블로거 세 사람은 모두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평범한 재료로 특별한 메뉴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에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인스턴스식품이나 가공식품은 거의 완성된 재료기 때문에 이를 써서 요리하면 실패할 확률도 적고 조리 과정도 간편하다"며 "요리 초보자가 쉽게 요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DIY 조리법이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얻자 식품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동서식품 안경호 홍보실장은 "인터넷에서 새로운 조리법이 나오면 인기도 높아지고 구매 수요도 늘어 제품 홍보에 큰 영향을 준다"며 "소비자가 내놓은 기발한 요리 아이디어가 신제품 개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hk.co.kr
■ 라면 쫄면·만두 피자… 요리조리 나만의 조합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은 보통 있는 그대로 또는 아주 간단한 조리 과정만 거쳐 먹게 된다. 간편하지만 딱히 맛있지 않고 영양가도 떨어진다. 최근 들어 요리에 적극적인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스턴트식품과 가공식품의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자적 노하우를 동원하는 경우도 많다. 요리 블로거와 식품회사들이 추천한 가공식품 업그레이드 요리법을 소개한다.
▲안 좋은 성분 빼기= 인스턴트식품의 대명사 라면. 몸에 썩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쫄깃한 면발 맛이 당길 때가 있다. 라면에서 건강에 안 좋은 건 바로 수프다. 수프는 빼고 면만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뒤 각종 야채와 고추장 소스에 비비면 점심 한 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라면 쫄면'이 된다. 건강도 챙기고 라면도 처리하니 일석이조.
▲부족한 영양 보충하기= 한 끼 뚝딱 때우는 데는 냉동만두가 제격이다. 하지만 영양성분이 부족한 게 문제다. 야채가 들어가긴 해도 여러 차례의 가공 과정을 거치면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대부분 파괴된다. 냉동만두를 살짝 데쳐 또띠아(얇게 편 밀가루 반죽)에 얹고 토마토소스와 피자치즈, 양파, 파프리카, 버섯 같은 야채를 올려 오븐에 구우면 영양 만점 '만두 피자'가 된다.
▲밋밋한 맛엔 색다른 재료 넣기= 국물용 멸치나 된장이 떨어졌는데 된장찌개는 먹고 싶을 때, 간혹 포장돼 나오는 찌개양념을 쓰게 된다. 양념을 물에 풀고 호박이나 두부를 썰어 넣어 끓이는 게 보통. 뭔가 빠진 것 같은 밋밋한 맛은 어쩔 수 없다. 지방 함량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우렁이를 추가하면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양 적으면 단짝 음식 찾기=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식품 수프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건더기가 들어 있어도 수프만 먹으면 배가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밥을 말아 먹자니 안 어울린다. 수프를 데운 다음 구운 베이컨이나 시금치를 넣으면 생각보다 훌륭한 스파게티 소스가 된다. 면을 삶아 끼얹어 먹으면 허기가 싹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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