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에 대해 "반미주의자가 아니냐"는 우려가 잇따라 나오자 민주당이 당황하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3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일동맹이 일본 외교의 기축"이라고 말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등한 대미 외교'를 표방해온 새 일본 정권에 대한 경계심을 말끔히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의 대미 독자노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직접적 화근이 된 것은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에 게재된 '일본의 새로운 길'이라는 하토야마 대표의 글이다.
그는 지난 달 일본 월간지에 게재된 '나의 정치철학'이라는 기고문을 발췌한 이 글에서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라는 이름의 시장원리주의에 농락당해왔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일극 지배가 끝나려 하고 있다면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력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미일 동맹을 중시해온 자민당 정권에 익숙한 미 정관계와 언론 등에서 연일 "반미를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예상치 않은 반응에 놀란 하토야마 대표는 실은 선거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바로 진화에 착수했다. 기자회견에서 NYT에 게재된 현실성이 없다는 미국의 비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일부만 게재됐는데 내가 쓴 글 전체는 결코 세계화의 부정적 부분만 말한 게 아니며 세계화는 부정적 부분도 있고 긍정적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수위를 낮췄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어 "글 전체를 보면 결코 반미적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라며 "동아시아공동체 구상도 미국 배제가 아니라 미일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동아시아의 경제와 평화,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대표가 3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미일 동맹이 기축"이라며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반미 우려를 불식하려는 선제적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미일관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미 1996년 민주당 창당 때 미일안보조약 재검토, 주일미군 상시주둔 폐지 등 미국이 보기에 급진적인 대미 노선을 표방했다. 이러한 노선이 많이 완화됐다고 해도 '대등한 미일관계'라는 공약은 여전히 비슷한 발상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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