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해 병원에 온 환자에게 간호사나 의사가 던지는 첫 질문은 "어디가 아프세요?"인 경우가 많다. 병이란 몸이 아픈 것이며 의료인의 임무는 그 아픔의 위치를 찾아내어 제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어법이다. 이것은 3분 진료로 정형화된 우리 의료체계에 어울리는 질문법이기도 하다. 환자는 급히 아픈 부위를 말하고 의료진은 각종 검사를 통해 증거를 수집한 다음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부합하는 질병을 찾아내고 처방을 낸다. 환자와 눈을 마주칠 시간은 거의 없다.
아픔치료보다 문제진단이 중요
하지만 환자의 관심은 아픔의 위치와 처방이기보다는 그 아픔의 '의미'인 경우가 더 많다. 똑같이 무릎에 통증이 있더라도 직업이 축구선수인 경우와 사무원인 경우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일 테니 말이다. 병이란 어떤 사람의 몸에 생긴 생리현상의 부정적 변화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에 생긴 '문제'이고 의료행위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의료인이 환자에게 던지는 첫 질문은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여야 한다는 것이 의료인문학의 주장이다.
의학교육도 정상적 몸의 구조와 기능을 다루는 해부학과 생리학, 그리고 병에 걸린 몸의 변화를 다루는 병리학을 따로 가르치는 대신 학생들 스스로 환자가 제시하는 문제와 그 의미를 파악하여 토론과 학습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는 문제바탕학습으로 바뀌고 있다. 맥락 없는 추상적 지식을 무조건 현실에 적용하기보다는 환자의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하는 살아있는 지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료행위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여 몸을 살리는 몸의 살림살이가 된다.
몸을 살리기 위해서는 독한 약과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환자와 의료인의 진실한 소통이 바탕이 되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상호신뢰가 두터울 때는 객관적으로 아무 약효가 없다고 알려진 약이 큰 효과를 보기도 한다. 플라시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일부 밝혀지기도 했고 몸과 마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증거는 이 밖에도 많다. 플라시보는 환자의 병이 삶에 부여한 문제와 그 해결 과정에 대한 몸-마음의 '의미 반응'이다. 환자인 나의 몸은 약과 수술뿐 아니라 나와 의사의 마음이 그것에 부여한 의미에도 반응한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30년 이상 우리 국민의 몸을 보살피는 살림살이의 근간이 되어왔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국민의료비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도 꼴찌에 가깝다. 보험 재정이 탄탄치 못하고 국민의 지갑에서 직접 나가는 돈이 많아 건강보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불만도 많다. 고질적인 저수가로 경영에 압박을 받는 의료기관도 많다. 생명을 살리는 고난도의 수술보다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불요불급한 서비스에 자원이 편중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건강보험 해법 우선순위 정해야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국민의 건강을 보살피고 몸을 살리는 건강보험의 살림살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 체계 속에 포함된 일부 계층의 불만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을 제외하면 OECD 국가 중 어느 나라도 국민건강의 문제를 자본의 이익이 관철되는 시장에 내맡기지 않는다. 무료진료 행사의 번호표를 받기 위해 하루 전부터 수천 명이 줄을 서는 미국의 의료제도는 결코 우리의 모델일 수 없다.
그런데 일부 정부기관과 학자들은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폐지하고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 놓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어디가 아프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기도 전에 수술 스케줄을 잡는 격이다. 이제 우리는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어디가 아픈지 대신 무슨 문제가 있고 그 문제가 구성원의 삶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이며 문제풀이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정할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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