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0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성공으로 위기의 중대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몰려오던 무렵, 국내에 뜻하지 않던 '피치 쇼크'가 전해졌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 한편에서는 "피치가 오판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외환위기 당시처럼 이른바 '신용평가사의 저주'가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팽배했다.
그로부터 근 10개월. 피치가 2일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았다. "향후 추이에 따라서 언제든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어!"라는 옐로카드(부정적 전망)를 거둬 들인 셈. 이제는 등급 하향이 아니라 최소한 현상유지, 나아가 등급 상향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초 피치는 우리나라 등급 전망을 낮출 때 경상수지 적자와 외화 유동성 2가지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10개월 새 사정은 대폭 개선됐다. 올 2월부터 흑자로 돌아선 경상수지는 7월까지 261억달러 누적 흑자를 기록 중. 피치가 당초 내놓았던 '연간 228억달러 적자' 전망을 180도 뒤집는 것임은 물론, 이 추세라면 우리 정부의 전망치(300억달러 흑자)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또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8월말 외환보유액은 전달보다 79억5,000만달러 늘어난 2,454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리먼 사태 직전(작년 8월말 2,432억달러) 수준을 넘어섰다. 피치는 "경상수지 흑자, 단기외채 감소 및 외환보유액 확충 등으로 대외채무 상환불능 우려가 현저히 개선됐다"고 평했다.
무엇보다 이번 피치의 신용등급 전망 상향이 의미를 갖는 것은 한국 경제의 강한 회복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피치가 작년 11월 등급이나 등급전망을 낮췄던 10개국 중에서 지금까지 등급을 원상 복귀시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올 들어서도 27건 등급 및 등급전망 하향 조정이 있었지만, 상향 조정이 된 건 한국을 제외하면 남미의 우루과이 뿐이었다.
우리 경제의 회복력은 성장률에서 확인된다. 피치도 등급 전망 상향 이유 중 하나로 2분기 한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꼽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날 한 세미나에서 "2분기 실질 성장률이 한국은행이 당초 발표했던 속보치(2.3%)보다 향상된 2.6~2.7%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추세다. 스탠다드차터드(-1.2%) 바클레이즈캐피탈(-1.2%) 모건스탠리(-0.5%) 등이 우리 정부 전망치(-1.5%)보다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엔 플러스 성장 전망(노무라증권 0%, 다이와증권 0.1%)까지 등장한 상태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근거 없는 비관론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낙관론도 경계 대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대외의존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세계가 평가하는 것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작년에 다른 나라보다 낙폭이 컸던 데다 환율과 정책 효과 등이 맞물리면서 빠른 복원력을 보이면서 외부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하지만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하고 서비스업 등의 회복이 더딘 점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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