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국가 간 범죄행위를 시인하는 것은 전쟁에서 지지 않은 다음에야 좀처럼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이런 광폭 외교를 구사하고 나선 것은 북일수교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그리고 북미 북일 수교를 한반도 평화정착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김 위원장에게는 체제 보장과 경제난 극복의 비전이기도 했다. 6ㆍ15공동선언은 DJ와 김 위원장이 이 비전을 공유한 결과였다.
대북채널 복원 꾀하는 '신 일본'
DJ는 김 위원장에게 북미수교 못지 않게 북일 수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북일관계 진전이 북미관계 진전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받게 될 100억 달러의 보상금은 북한 경제난 극복에 귀중한 재원이기도 했다.
문제는 일본이 강력히 제기해온 납치자 의혹의 진상 규명과 해결이었다. DJ는 일본과 수교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방북을 통해 납치 시인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6ㆍ15 정상회담 후 상당기간 김 위원장이 DJ와 공유한 비전에 입각해 핵과 미사일을 카드로 북미 및 북일 수교를 추진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자 문제 시인 및 생존자 귀국 조치 후 북일관계는 김 위원장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일본측이 귀환한 5명의 납치피해자 외에 더 많은 피해자가 생존해 있을 것이라며 이들의 귀환 및 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양국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의 진전 없이는 어떠한 대북지원도 할 수 없다며 6자회담 틀 내에서 자국에 할당된 의무조차 일절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은 북한대로 일본과 절대 상종하지 않겠다며 일본 배제를 외친다.
납치자 문제와 핵 및 미사일 도발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납치자 문제 해결에서 긍정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북한에 당근은커녕 가혹한 채찍을 휘두른 결과가 됐다. 개혁과 개방이 납치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떠들면서 정작 개방 쪽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일 때 채찍을 휘두르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북한은 납치자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령 납치피해자가 더 생존한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강경일변도로 밀어붙이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일본의 8ㆍ30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대승을 거뒀다. 선거혁명으로 불리는 일본의 정치구도 변화가 북일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매우 궁금하다. 북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워낙 나빠 대북정책 변화에서 민주당 정권의 운신 폭이 넓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민당이 스스로 채웠던 족쇄에서 민주당은 비교적 자유롭다. 일본 자체의 대북제재는 물론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 대열에서는 이탈하지 않겠지만 민주당 간부들이 대북채널 복원을 거론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달라진 북에 생존비전 제시를
북한은 일본 총선 바로 다음 날 민주당의 승리와 자민당의 참패 사실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했다. 구체적인 논평은 없었지만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일본이 북핵과 미사일, 납치자 문제의 해결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김 위원장이 6ㆍ15남북정상회담 직후처럼 북일, 북미 수교에 생존의 비전을 갖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은 최근 DJ서거 조문 등을 통해 미국과 남한에 잇단 유화제스처를 취하며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 들어설 하토야마 정권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ㆍ 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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