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편향'논란 속에 일부 표현의 수정을 놓고 이념 갈등을 빚었던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저자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교과서 수정지시에 반발해 제기한 저작권 침해정지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 이성철)는 2일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의 저자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5명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일방적인 수정 지시로 출판사가 교과서를 수정ㆍ발행해 저작인격권을 침해 당했다"며 금성출판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올 초 이미 일선 학교에 배포된 수정 교과서를 회수할 수는 없지만, 향후 발행과 판매, 배포는 금지됐다. 또 저작권 침해에 따른 출판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돼 저자들은 400만원씩 배상을 받게 됐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저자들의 '동일성 유지권'이었다. 동일성 유지권은 저작권법상 제3자가 저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을 임의로 변경ㆍ삭제해 저작물의 본질적 동일성을 해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리이다.
저자들은 이번 소송에 앞서 가처분 신청도 냈지만, 당시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부장 이동명)는 저자와 출판사간 계약내용과 저작권법 등 일부 제한 조항을 근거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안 소송의 재판부는 출판사가 임의 수정의 근거로 주장했던 계약서 내용과 저작권법,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교과서규정)의 제한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반면, 저자들의 저작권은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우선 '교과부로부터 수정 지시가 있을 때 저자들은 수정ㆍ개편한 원고를 출판사에 제공, 출판사는 저자의 요구와 교과부 지시에 따라 기일 안에 수정해야 한다'는 계약 내용에 대해 재판부는 "저자들이 동일성 유지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저자들이 원고를 제공하며 출판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이상 출판사는 교과서를 수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교과부 장관이 교과서 내용의 수정이 필요할 경우 저자와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령할 수 있다는 교과서규정 26조에 대해서도 "해당 조항은 저작자가 수정명령을 위반했을 경우 장관이 교과서 검정합격의 취소나 발행정지를 명령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뿐"이라며 "동일성 유지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저작권법 13조의 '저작물의 이용 목적 및 형태에 따라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변경에 대해 저작권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 역시 재판부는 "기술적 수단 부족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을 경우 등 사회통념상 필요한 최소의 범위 내에서만 변경이 허용될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저자들의 소송 대리인인 김도형 변호사는 "판결의 취지를 크게 환영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출판사가 아니라 교과부의 태도"라며 "다음해에도 수정을 거쳐 교과서를 출판해야 하는데 교과부가 판결 취지에 맞게 저자들의 저작권을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과부는 "출판사가 항소하겠다고 하니 확정판결을 기다려본 뒤 추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며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현행 교과서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