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장엄한 선율에 안중근의 '장부가'를 연상시키는 가사.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두 배우 류정한, 정성화씨는 1909년 의거한 도마 안중근을 재현하기에 충분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뮤지컬 '영웅'의 제작발표회 현장이다. 안중근 의사 의거일 100주년에 맞춰 10월 2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를 이 작품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연출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내놓은 두 번째 창작 뮤지컬. 37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36개 곡 중 거사를 결정하고 동지들과 결의를 다지는 1막 엔딩곡인 '그날을 기약하며' 등 3곡과 주요 배우 및 의상이 소개됐다.
'영웅'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당시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여기에 안중근을 사랑하는 중국 여인 링링과 명성황후 시해의 참상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마지막 궁녀 설희라는 가상인물을 추가, 극적 전개를 꾀했다. 설희는 대한제국의 정보부로 알려진 제국익문사의 일원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유혹해 그의 목숨을 노린다.
윤호진 대표는 '영웅'을 5년 전부터 구상하고 3년 간 제작할 정도로 오래 끌었다. 그간 작곡가는 두 번 바뀌었고, 대본은 40여 차례 고친 것도 모자라 지금도 수정 중이다. 문헌 조사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두 차례 현장답사하는 등 고증에도 힘썼다. 작곡을 맡은 오상준씨는 "무거운 주제지만 곡에서 어두움을 따뜻한 음색으로, 무게감을 빠른 템포로 극복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안중근 역할을 맡은 두 배우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청중을 압도했다. 류정한씨는 "100년 전 그 분이 내게 꼭 빙의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했고, 더블 캐스팅된 정성화씨는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해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열의를 표했다.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은 이희정씨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야심찬 인물이지만 황혼이 깃든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려 애쓸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진 대표는 "'영웅'은 한중일을 아우르는 프로젝트로 뮤지컬 '명성황후'가 이루지 못했던 일본 진출도 기대하고 있다"면서 "안 의사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장에서는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회장을 맡은 '뮤지컬 영웅 후원회'의 발족식도 함께 열렸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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