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정권교체를 기대하며 민주당에 표를 던진 일본 국민들스스로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전후 처음 중의원에서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며 자민당 일당지배를 무너뜨린 민주당의 집권은 일본 정치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앞으로 민주당의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일본 정치학자 노나카 나오토(野中尙人) 가쿠슈인(學習院)대 교수에게 들었다.
- 민주당 정권교체의 의미는.
"자민당 '55년 체제'로 상징되는 전후 일본 정치가 명실상부하게 끝났다. 자민당 체제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돼 본격적으로 새 정치 체제로 바뀌고, 정책 내용도 변하는 것이다. 자민당과 관료가 하나였던 일본의 정치구조가 21세기에 걸맞는 체제로 변화할 것이다."
- 정권교체가 가져올 일본의 변화는.
"민주당은 관료정치 타파를 외치고 있다. 1, 2년 내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제부터 일본 정치는 거의 전부 바뀐다고 봐도 좋다. 앞으로 10년 동안 조금씩 모든 것이 변해 갈 것이다. 정권교체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이번은 다르다.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분명히 변한다."
- 자민당이 장기집권한 이유는.
"조건이 3가지 있었다. 하나는 냉전이다. 냉전 동안에는 야당인 사회당에 대한 선택여지가 없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보수당이 유일하게 믿고 맡길 정당이었다. 다음은 고도경제성장이다. 경제성장을 지속해가면서 자민당은 그 결실을 효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분배했다. 발전이 더딘 지방을 지원하고 농ㆍ어업에 자금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국민의 최저 가처분소득을 끌어올리는 재분배정책을 능숙하게 해냈다. 마지막으로 중선거구제도다.
자민당 내에 파벌 체제가 만들어지고 파벌과 정치인 개인의 후원회가 연동, 선거에서 하나가 돼 과반수 획득이 가능했다. 반면 야당은 파벌 대신 복수 정당으로 갔다. 사회당은 제법 컸지만 점점 분열했다. 한 사람을 뽑는 소선거구제도에서는 양대 정당 구조가 되기 마련이지만 중선거구제에서는 복수의 당선자가 나오기 때문에 자민당엔 파벌이, 야당엔 복수 정당 구조가 들어섰다.
이는 자민당에 유리한 구조다. 이런 상황이 몇 십 년 계속됐다. 선거구의 여러 민원들을 당내 파벌 소속 족(族)의원들이 정책에 효과적으로 반영해 해결하는 구조가 잘 작동했다. 선거와 정책 수립, 당 운영이 매우 원활하게 연계되는 시스템이었고 그래서 강력했다."
-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자민당이 4년만에 참패한 이유는.
"자민당의 패배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지난 총선은 자민당이 이긴 것이 아니다. 자민당이 무너지기 직전 고이즈미(小泉)라는 특수 정치인이 등장해서 몇 년간 특수한 정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방식은 중선거구제 아래의 파벌과 연공서열 체제, 족의원 정치 등 자민당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자민당을 전부 부정하면서 마치 불꽃놀이처럼 피어오른 것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불꽃놀이로 자민당은 무너져버렸다. 체제가 붕괴됐기 때문에 아베(安倍)가, 후쿠다(福田)가, 아소(麻生)가 해도 안 되는 것이다. 4년만에 바뀐 게 아니고 4년 전 일어날 일이 4년 후 필연적으로 일어난 것일 뿐이다. 4년 동안 쌓이고 쌓인 국민의 불만이 드디어 터져버린 것이다."
- 자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지금까지 자민당 체제는 세수에 비해 배분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런 분배가 불가능해졌다. 이제는 분배하던 곳에서 받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농어업 지원이 줄어들고, 공공사업이 적어지면서 건설업자도 힘들어졌다. 사회보장비마저 줄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모두가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민주당 정권에 대한 불안감은.
"대안이 없어 민주당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권 이후 민주당엔 어려운 일들이 많을 것이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가 있다. 여기서 또 이기면 맘먹은 대로 정치를 펴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정권 운영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책은 물론 정치체제, 정부구조를 바꿔야 하고 국회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래서 참의원 선거까지는 어려운 사안에는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 민주당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관료정치 타파는 간단치 않다. 민주당 생각은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이겨 향후 3년 동안 실행한다는 것이다. 육아지원금 등 재원 문제의 경우, 공공사업 수의계약 등 자민당 정책을 바꾸면 5조, 6조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외교는 걱정할 게 없다. 민주당은 지금 말하는 만큼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일 대등 외교가 공약이라고 미일 관계가 무너지는 상황으로 瘠?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 한국을 포함한 대 아시아 외교 변화는.
"긍정적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나리오를 갖고 무엇을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자민당 보다 아시아 외교를 잘 해 나갈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국내 비판까지 무릅써가면서 대담한 정책을 펴기는 어려울 수 있다.
북한핵 문제나 주일미군 관련, 미일지위협정 정도에 적극적으로 손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대체할 추도시설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집권 1년 동안은 어려울 것이다. 필요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논쟁이 불거질만한 어려운 문제는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룰 것이다. 참의원에서도 단독으로 과반수를 얻어야 집행이 가능하다."
●약력
1958년생, 도쿄(東京)대 박사(국제관계론), 시즈오카(靜岡)현립대 조수 거쳐 가쿠슈인대 법학부 교수, 저서 <자민당 정치의 종식> <자민당 정권 하의 정치 엘리트> <공무원제도 개혁> 등 공무원제도> 자민당> 자민당>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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