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은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천문, 지리서부터 역사, 철학, 문학 등의 인문학에다 심지어 기계공학까지 모든 분야에 두루 능한 천재였다. 1,200여년 뒤의 다빈치조차 그에 비하면 범재로 보일 정도다. 그런데 하나가 모자랐다. 사람을 쓰고 다루는 용인(用人)이다. 그는 인물을 택할 때 무려 7단계 시험으로 평가했다. 술 먹이고, 뇌물도 주어 보는 등 온갖 방법으로 판단력, 충성심, 지식, 용기, 성품, 청렴도를 체크한 뒤 마지막엔 실무수습까지 거치도록 했다. 요즘의 웬만한 평가시스템을 뺨치는 수준이다.
■ 사가들은 너무 꼼꼼히 살피는 제갈량의 인재등용방식을 촉한(蜀漢) 패망의 한 원인으로 꼽는다. 두루 문제되지 않는 이들만 뽑다 보니 그의 치세 이후 촉한에는 두드러진 재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강유 정도가 있었지만 그 역시 인품은 고매하나 정작 난세에 필요한 지략, 용력은 전대의 영웅들에 비하면 그저 고만한 수준이었다. 반면 조조의 용인술은 숱한 연구 저작물이 나올 만큼 대단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두 지도자의 사람 쓰는 차이가 위ㆍ촉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 나라 인사철이면 으레 이런 사료(史料)를 들어가며 "능력 위주로 인재를 구하라"는 원칙론적 조언들이 나온다. 단골로 인용되는 용인의 달인은 조조를 비롯해 제환공, 한고조 등 대여섯쯤 될까? 하지만 큰 일 날 소리다. 이들의 용인술 핵심은 '능력만 있으면 나머지는 일절 불문'이다. '군사(軍師)는 계략만 잘 쓰면 되고, 장수는 싸움만 잘하면 되고, 관리는 해당 분야만 잘하면 되고…' 식이다. 이들이 중용한 인물 중에 살인, 강도, 폭력전과가 즐비한 무장들은 그렇다 쳐도 제환공의 패업을 도운 명재상 관중조차 친구 등쳐먹은 사기꾼 출신이다. 요즘이면 청문회에 올릴 엄두도 낼 수 없는 인물들이다.
■ 인물난 한탄은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없다"처럼 유사 이래 되풀이돼온 푸념이다. 더욱이 우리는 능력이 도덕의 우위 가치이던 고속성장시대를 거친 데다, 과도한 편 가르기로 그나마 쓸 수 있는 인재풀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황이다. 결국 네 편이라도 골라 쓰는 외에 딴 도리가 없다. 아니면 누가 하든 회전문 인사로 욕 먹을 터다. 또 어차피 친북좌파가 아니고야 우리의 편이란 게 크게는 다 보수의 틀 안에서 아웅다웅하는 것이니까. 글쎄, 그러면 또 "매양 쓰는 게 그 인물"이라고 말 듣게 될까?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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