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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앙정보부 건물 철거말라" 역사신탁 운동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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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앙정보부 건물 철거말라" 역사신탁 운동 나섰다

입력
2009.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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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남산 예장자락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옛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을 철거키로 한 데 대해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적 교훈을 위해 옛 중정 건물을 보존, 인권 공원 등으로 조성해야 한다며 아예 시민 모금을 통한 토지 매입 운동에 나섰다.

명동ㆍ충무로에서 남산을 연결하는 남산 관문인 중구 예장동 4번지 일대에 자리잡은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서울시청 별관, 서울시균형발전본부 등 4개 건물은 1961년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각각 본관, 지하취조실, 수사국, 6국(학원사찰 담당)으로 사용했던 악명 높은 건물들이다. 대학생들과 민주화 인사들을 상대로 잔인한 고문이 자행됐던 독재 권력의 상징적 장소였다.

이 일대 2만4,000여평을 차지했던 안기부가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건물 27개 동 중 23개 동이 해체됐고 4개 동만 남았다. 서울시는 올해 3월'남산 르네상스' 사업으로 2011년까지 이들 건물을 모두 헐어 1만1,500㎡의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역사학자와 문화계 인사 등을 중심으로 "부끄러운 역사라 하더라도 허물기 보다는 보존하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라며 옛 중정 건물 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아예'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이란 공익법인을 만들어 '남산 역사신탁(Histroy Trust)'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모임 명칭인 'ㄱ'은 '기억'또는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다.

28일 서울 중구 예장동 문화의 집 본관에서 열리는 발기인 대회에는 지선 스님, 이해동 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3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모임은 우선 이 일대에 자리잡았던 옛 조선통감 관저 터를 매입해 관저 복원 사업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조선통감 관저는 1919년 8월 22일 조선통감 데라우치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을 비밀 체결했던 장소로 경술국치의 민족적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지금은 잔디밭으로 변했고 통감관저 터를 알리는 판석만 남아 있다. 모임은 또 국내외에서 서명 및 모금 운동을 확산시켜 옛 중정 건물까지 매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슬픈 과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수치스러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 후세대의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임 관계자는 "서울시를 방문해 옛 중정 건물을 인권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등 이 일대를 제국주의ㆍ평화ㆍ인권을 되살리는 기념 공원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남산 르네상스 사업은 남산의 자연성을 회복해 남산의 본 모습을 찾자는 취지인데, 계획을 변경하기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옛 중정 건물 철거를 둘러싸고 진통이 예상된다.

●역사신탁

'역사신탁(History Trust)'이란 시민들의 모금이나 기부를 통해 훼손 위기에 놓인 역사적 건물이나 대지를 매입해 보존ㆍ복원하는 운동으로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다. 역사적인 공간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으로 개발과정에서 훼손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매입해 후대에 전승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보존가치가 높은 습지나 갯벌 등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 보호를 기치로 189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와 비슷한 맥락의 사업이다. 국내에서도 2000년 한국내셔널 트러스트가 발족해 강화군 매화마름 군락지 등을 매입해 보호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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