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우리는 그 분께 복종하는 자들이다." 이슬람 꾸란(코란)의 한 구절이다. '너희'란 아브라함일 수도 모세일 수도 있고, 예수일 수도 있다. 히브리어 야훼(여호와)와 아랍어의 알라와 한국어의 하나님이 그 '한 분'이다. 그리고 무슬림은 바로 '그 분께 복종하는 자' 모두를 일컫는 아랍어다.
서울 한남동의 한국이슬람교 중앙성회 정문 이마에는 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슬람교의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알라와 무슬림의 존재론적 좌표를 밝히는 저 인용의 방어적 자세가 한국 이슬람교의 오늘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터키군이 한국에 이슬람교를 전파한 게 1955년이니 반 백년이 넘었지만, 이슬람교는 아직 이방의 낯선 종교로 외면되거나, 왜곡으로 덧칠돼 있다. 이슬람교의 단식월 라마단을 맞아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회 이주화(46ㆍ부 이맘) 사무총장을 만났다.
- 라마단은 어떤 의미인가.
"한 마디로 정화와 회개를 통한 재생이다. 단식을 통해 육체적 고통을 체험하고 이웃을 이해하는 게 첫째 의미이고, 두 번째는 살면서 저지른 실수와 피폐해진 정신을 예배를 통해 올바른 자리로 되돌리는 것, 셋째는 물질적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자신과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이끄는 것이다."
- 어떻게 이행하나.
"새벽 4시 20분께 시작되는 파자르(새벽 예배) 이후부터 일몰시간까지 식도로 그 어떤 것도 넘기지 않아야 한다. 하루 다섯 차례 예배에 충실히 임해야 하고, 부부도 서로를 삼가야 한다."
이 사무총장도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출근한 참이라고 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저녁까지 버티는 게 쉽지는 않을 듯했다. "허기지고, 더울 땐 목도 마르다. 그 불편과 고통을 경험하고 인내해야 라마단의 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고행의 계율을 따르고 있을 한국 이슬람교인은, 중앙ㆍ지방 성원 입교 연명부에 따르면, 13만여 명. 그 가운데 한국인 신도도 3만5,000명 정도라고 한다. 물론 여행자나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이는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 생각보다는 신도가 많은 것 같다.
"1960년대 말~70년대가 이슬람교 포교 및 전파의 전성기였다. 플랜트 수출과 석유 등 자원외교를 위해 한국 정부가 이슬람 국가들을 끌어안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시절이다. 중앙성원 부지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하사했다. 한국 포교 성과가 알려지면서 중동 국가의 지원도 쇄도해 리비아와 이집트, 쿠웨이트가 각각 부산과 전주, 경기 광주 성원의 건립비용 일체를 경쟁하듯 지원했다. 90년대 들면서부터는 외국 원조는 거의 끊겼다."
- 오해와 편견은 여전한 것 같다.
"9ㆍ11사태 이후 오히려 이슬람교 바로 알기 분위기가 조성된 듯하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 분들이 몰려와서 돌을 던지기도 했고, 지금도 무슬림을 과격 테러 이미지와 연결 짓는 이들이 없진 않다.
우리는 역사ㆍ세계사 선생님들을 초대해 지속적으로 특강을 해왔고, 일반인 문화강좌와 소책자 배포 활동도 펼쳤다. 이제 학교에서 더 이상은 '한 손엔 칼, 한 손엔 꾸란' 식의, 교리상 근거 없는 호전적 문구로 이슬람교를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슬람교 왜곡의 역사는 11~12세기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선명해진다. 유럽 왕들과 성직자들은 '무슬림=악마의 자식'이라는 등식을 세속에 각인시켰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반역의 사기꾼'으로 타매했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의 한 구절에서 무함마드를 '가장 저급하고 흉물스러운 추문과 불화의 사나이'라는 오명을 씌워 "두 동강이로 몸이 찢겨진 채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끔찍한 지옥의 수렁 속"으로 던져 넣기도 했다.
무슬림은 '자카'라는 희사의 의무를 져야 한다. 1년 수익 중 순이익의 2.5%를 사회에 환원하는 의무인데, 기독교의 '십일조'와 달리 굳이 이슬람 성원에 내지 않아도 된다. 자카의 이행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가르침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꾸란의 가르침은 그렇다.
"명예살인처럼 지역적 전통이 이슬람교의 문화인 양 오해되는 경우도 있죠. 일부다처, 엄밀히 말하면 일부4처제는 율법의 가르침이지만 여인과 고아들의 보호ㆍ양육 등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채 성차별의 맥락에서만 언급하는 것도 옳지 않아요."
이 사무총장은 고교를 졸업하고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로 유학, 10년 간 이슬람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사적인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알라의 말씀이 좋아서 공부하게 됐죠. 다 하나님의 뜻이겠지요."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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