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큰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정치는 도박이 아니다. 생활이 걸린 문제다. 경기를 후퇴시킬 작정인가."
총선을 이틀 앞둔 28일 오전 일본 남부 오이타(大分)현 벳부(別府)시. 흐렸지만 기온은 34도까지 치솟아 무덥기 짝이 없는 날씨 속에 자민당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의 가두연설이 시작됐다. 18일 후보 접수 마감 이후 열흘 동안 이어온 자민당 후보 지원 유세의 메뉴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잘 할지 모르지만 한번 맡겨보자는 투표는 안 된다', '경제는 자신있다, 자민당과 함께 불황을 이겨내자', ' 민주당의 외교안보로는 일본을 지킬 수 없다', '재원도 없는 선심공약 남발에 속지 말라' 등등.
전혀 호응이 없지 않지만 보수색 강한 남부 규슈(九州) 유권자들도 왠지 덤덤하다. 언론들이 지난 주부터 일제히 민주당의 압승을 예상하자 승부가 이미 끝났다고 느끼는 걸까. 이번에는 자민당 아닌 정당에 한번 맡겨보자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같은 시간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 역시 남부 시코쿠(四國)를 돌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라도 방심하면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 이기고 있다는 생각은 버려라." 도쿠시마(德島)현 아난(阿南)시의 가두연설은 벌써 수성(守城)을 고민하는 승자의 얘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하토야마 대표는 후보 지원 연설에서 주로 공약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민당 공격하려다 말실수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이변이 없는 한 30일 투표에서 민주당의 압승은 확실해 보인다. 자민당 지배의 전후 정치체제를 청산하는 반세기만의 역사적 정권교체다. 자민당 거물들을 침몰시키고 있는 민주당 신진 여성후보들은 새 시대 개막의 상징이다.
13선의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총리를 넘어뜨릴 기세인 다나카 미에코(33) 전 민주당 의원 비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와 일전을 겨루는 방송 기자 출신 미야케 유키코(三宅雪子ㆍ44)씨,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전 방위성 장관과 승부를 겨루는 후쿠다 에리코(福田衣里子ㆍ28)씨 등등.
2005년 고이즈미(小泉) 총리 주도로 자민당이 압승한 '우정민영화' 선거에서도 '여성 자객'들이 큰 활약을 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자민당 55년 체제'를 연명하는 '산소호흡기'가 아니라 "일본을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는"(김숙현 도호쿠대 교수) 주역을 그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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