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영 펠튼 지음·윤길순 옮김/교양인 발행·496쪽·2만3,000원.
8년 전 9월 11일, 납치된 두 대의 비행기가 미국 자본주의 패권의 상징물이던 뉴욕 쌍둥이빌딩을 들이받은 이후, 세상 사람들은 적잖이 불편한 변화들을 지켜봐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미국은 자유나 정의 같은 단어로 치장된 명분을 내세우며 세계의 질서와 구조를 뜯어고치고 있는데, 그 바탕에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새로운 패권논리가 있다는 것은 미국도 굳이 숨기지 않는 사실이다.
<용병> 은 미국의 패권 전략을 수행하는 전통적 하드웨어인 군사력이 신자유주의라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뒤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룬 르포르타주다. 저자 로버트 영 펠튼(54)은 탈레반, 체첸 반군 등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탐사보도해 온 저널리스트. 그가 보여주는 '불편한 변화'는 민간산업화한 전쟁, 곧 '주식회사 군대'의 모습이다. 용병>
'테러와의 전쟁'으로 지칭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투는 전쟁에 관한 여러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개전의 명분은 그것이 허위로 드러난 뒤에도 작동하고 있고, 종전을 선언한 후에 수천명이 교전 중에 사망했음에도 그 종전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변화는 역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민간 군사기업의 등장일 것이다.
저자는 "민간 보안산업은 연간 시장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최고 유망산업으로 떠올랐다"며 그 실태를 파헤친다. 그리고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가가 공권력을 민영화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3년 동안 4개 대륙의 분쟁지역을 직접 취재해 증언한다.
전쟁에 용병이 동원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이 벌여놓은 전쟁터에서는 전혀 다른 성격의 용병이 등장하는데, 미국 정부는 이들을 '용병(mercenary)'이라고 하는 대신 '민간 군사 청부인(private military contractor)'이라 규정한다. 돈을 받고 전투를 치른다는 점에서 같지만, 용병이 군에 소속된 병사인 반면 민간 군사 청부인은 아웃소싱 형태로 조달된 일종의 프리랜서다.
위험한 교전 현장에서 '청부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비용 절감" 때문이다. 청부인들의 하루 급료는 500~700달러 수준으로 언뜻 굉장히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보험이나 의료를 제공할 필요가 없고, 전사하거나 은퇴한 후의 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훈련도 민간 기업이 대신해 주고 필요할 때만 계약해 쓰면 되는, 매우 매력적인 "일회용 군인, 근육과 강철 덩어리"다.
미국 정부가 청부인에 의존하는 더 큰 이유는 정치적인 데 있다. 저자는 "호전적인 군인들은 국제 문제를 야기하고 국가에 망신을 줄 수 있지만, 청부인은 해고하면 그만"이라며 정치적 비용의 '저렴함'을 강조한다. "비난을 아웃소싱하면 군이나 정부가 비난받을 일도 없다. 계약이 법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정부는 공식적으로 어떠한 군사력 남용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품질과 규모, 고객 만족"의 논리로 움직이는 '주식회사 군대'의 폐해는 교전지역 민간인뿐 아니라 고용된 청부인들에게도 돌아간다. 청부인들은 불리한 전투를 치르더라도 정규군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들은 "정부가 언제든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 병사들"이기 때문이다.
총을 든 청부인들과 그들의 비즈니스(전투) 현장을 직핍하게 전하며 저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지나간 사략선(전시에 적선을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민간 무장선)과 현상금 사냥꾼들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업들이 미래에 선을 위한, 또는 악을 위한 세력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통찰에 이르기를 바란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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