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항의 서한' 파문으로 표면화한 국방 예산 갈등은 해묵은 문제라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군 내부와 청와대·예산당국 간에 예산처리를 싸고 시각차이가 워낙 컸던 상황에서 이 장관의 돌출행동이 이를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국방 예산안 갈등의 뇌관은 국방개혁기본계획(국방개혁2020)이다. 이 계획은 2005년 참여정부에서 마련된 뒤 현 정부 들어 수정 작업을 거쳐 6월 26일 수정안이 국방부에 의해 확정, 발표됐다. 2020년까지 599조원을 투입해 전력을 첨단화하고, 병력은 현 65만5,000명에서 2020년 51만7,000명 수준으로 줄이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국방개혁2020 수정안에 대해 청와대ㆍ예산부처와 국방부가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수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가 어느 정도 유효성을 갖느냐의 문제다. 국방부는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이상 계획 전체를 확정된 것으로 여긴 반면, 청와대와 예산부처는 예산 투입 규모 등 세부 사항은 확정된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예산과 관련한 사항은 예산부처의 심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등은 과거에도 종종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군은 대통령의 서명만 얻으면 더 이상의 외부 논의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이 때문에 과거에도 갈등을 빚곤 했다"고 말했다. 군사정권에서 통했던'국방 예산 우선'의 경험칙이 예산 심의라는 예산부처의 법률적 권한과 부딪혀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이 장관의 서한 전달 사실이 알려지면서 군 내부에서는 "할 말을 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장교는 "정부가 '4대강 살리기'에 모든 목표를 맞추다 보니 국방부 뿐 아니라 모든 부처들이 예산 삭감의 압박을 받고 있다"며 "4대강을 살리기 위해 군이 추진 중인 국방개혁, 전력증강, 미군기지이전사업 등 굵직한 안보 현안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도 좋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장관의 돌출행동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장관의 뜻을 아무리 좋게 받아들인다 해도 굳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국방장관은 국무회의 등 공개적인 자리를 통해서 이러한 사안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데 개각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서한 발송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
또한 정부 관계자는 "국방예산 삭감에 대해 군 내부는 물론 예비군까지도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의견제안을 넘어 협박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군이 외부 자극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멀리 봤을 때 군에 반드시 이롭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장관은 이날 서한 내용이 보도된 데 대해 "이 시기에 그런 정도 말도 못하느냐. 장관으로서 할 말을 한 것일 뿐"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 장 차관은 기자와 만나 "(청와대와의 국방 예산 협의가) 그게 (차관) 독단으로 할 수 있는 문제겠느냐"며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됐음을 시사했다.
진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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