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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3000만원 상품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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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3000만원 상품권

입력
2009.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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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초 처음 허용된 상품권은 70년대 중반 과소비 조장과 부조리의 온상으로 지목돼 1994년까지도 발행이 전면 금지됐다. 그 해 관련법 개정으로 상품권 발행이 다시 허용되긴 했지만 재판매 금지나 공탁금 예치 등 까다로운 조건이 달렸다. 재계의 줄기찬 로비에 힘입어 '규제 완화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상품권 발행이 전면 자유화된 것은 1999년이다. 이후 고삐 풀린 상품권은 종류와 액면, 품목에서 진화를 거듭했고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선호되는 친숙한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 그래도 상품권이라면 아직도 70년대식의 어두운 냄새가 난다. 박연차씨의 로비수단의 하나가 상품권 다발이었던 것에서 보듯, 뇌물 관련 사건에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해서 그럴 것이다. 올해 초 설에 롯데백화점이 3,000만원 짜리 상품군을 내놨을 때 괜한 박탈감과 함께 '상품권을 빙자한 뇌물권'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던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당시 몇 가지 사은품을 곁들인 이 상품권세트는 37세트가 팔렸고 그보다 낮은 1,000만원 짜리도 2,609세트나 나갔단다. 입이 딱 벌어지지만 누가 어떤 용도로 사갔는지는 당연히 영업비밀이다.

▦ 재미를 본 롯데는 24일부터 300만원, 1,000만원, 3,000만원 등 3가지 고액상품권 7,230세트를 한정 판매하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창사 30주년 행사라지만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겨냥했음 직하다. 3,000만원 짜리 세트를 구입하면 순금 26.25g(7돈)으로 만든 골드카드와 백화점 주차권이 따라온다. 이에 질세라 신세계백화점도 내달부터 1,000만원과 3,000만원의 고액상품권을 한정판매하며 현대백화점 역시 지난 주 1,000만원짜리 상품권 500세트를 출시했다. 이런 액수의 상품권을 선물용이라고 내놓은 백화점들의 배포가 놀랍다.

▦ 때맞춰 지난달 23일 첫 선을 보인 5만원권 발행량이 두 달만에 1억장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26일까지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은 1억36만장, 액수로 5조원을 넘었다. 한은은 수표대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좋아하지만 10만원 수표보다 5만원권 보기가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5만원권에도 고액 상품권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덧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돈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대기업과 자산계층의 세부담을 쥐꼬리만큼 늘리는 세제개편안마저도 포퓰리즘 운운하며 열 올리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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