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정동영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가치의 국부(國父)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제 지지자들과 함께 묘소를 참배하고 그리 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가치의 국부'라는 말이 생경하게 들리지만, 아마도 고인이 추구한 민주 평화 화합 등의 고상한 가치를 이를 테면 국가 이념으로 삼고 그를 표상으로 받들자는 뜻인 듯하다. 많은 국민이 고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가운데 이른바 'DJ 후계자' 경쟁에 나선 정치인이 나름대로 최고의 헌사(獻辭)를 마련한 것으로 눙쳐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구석이 여럿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국부'는 문자 그대로 '나라의 아버지'라는 뜻이며, 원래 왕조시대 임금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현대적 의미로는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일컫는다. 우리보다 앞선 세대의 신봉자들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국부'라고 찬양했다가 이미 당대에 '시대착오적 간신들의 아부'라고 지탄 받은 곡절과 연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총명한 정 의원도 이런 까다로운 사정을 헤아려 곧장 '국부'라고 하지 않고 일부러 에둘러 '대한민국 가치의 국부'라고 자못 난해하게 말했을 것이다.
■국부를 받드는 게 반드시 권위주의 사회의 낡은 관행은 아니다. 대만은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 쑨원(孫文)을 공식적으로 국부로 추앙한다. '국부기념관'도 있다. 1912년 청(淸)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辛亥)혁명으로 2,000년 전제정치를 종식시키고 최초의 공화국 수립을 이끈 공적을 기리는 것이다. 중국도 그를 항일투쟁과 인민공화국 창설을 주도한 마오쩌뚱(毛澤東)과 나란히 예우한다. 베트남의 호치민(胡志明), 인도의 간디와 네루, 필리핀의 호세 리잘, 이탈리아의 가리발디 등 독립과 건국의 지도자들이 이 반열에 든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ㆍ토머스 제퍼슨ㆍ제임스 메디슨 등 7명을 '건국의 아버지들'로 기린다. 헌법을 기초한 '헌법의 아버지'들을 함께 받든다. 이런저런 사례와 경험에 비춰 정 의원의 주장은 언뜻 기발하나 역시 엉뚱하다. 더러 가상하게 여길지 모르나, 민주 평화 화합 등의 헌법적 이념과 가치를 상징하는 국부로 추앙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리어 그에 역행하는 것으로 들려 자칫 고인을 욕되게 할 수 있다. 유치하게 과장된 앵커 멘트라면 모를까, 섣불리 떠들 일이 아니다. YS가 지적했듯 과공(過恭)은 비례(非禮)가 되기 십상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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