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된 지 136일만에 석방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가 억류기간 북측의 강압적인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유씨가 남북 합의를 위반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정부는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이 참여한 합동조사반을 구성, 14일부터 20일까지 조사를 벌인 후 이런 내용의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3월30일 억류된 유씨는 목재의자에 정자세로 앉은 채 조사를 받았고, 조사관 및 경비요원 등으로부터 반말ㆍ욕설 등 언어폭력을 수시로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북측이 한 차례당 3~5분씩 10여차례 무릎을 꿇고 앉도록 했으며, 취침 때 소등을 해주지 않는 등 비인도적인 처우도 이뤄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구타 폭행 고문 등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강압적인 조사를 했다고 유씨가 밝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씨는 '개성ㆍ금강산 지구 출입ㆍ체류에 관한 합의서(이하 합의서)'를 위반, 빌미를 제공했다. 2005년 8월부터 개성공단 내 현대아산 숙소관리 담당 직원으로 일하던 유씨는 숙소 청소를 하던 북한 여성 이모씨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 및 북한체제 비판, 탈북 권유ㆍ방법 등의 내용이 포함된 편지를 수 차례 보내 체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상대 체제 및 지도자 비판 금지를 명기한 합의서 10조 2항 위반이다.
특히 유씨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됐다. 유씨는 1998년 모 건설업체 직원으로 리비아의 한 병원에 파견돼 근무하던 중 북한 여성 간호사 정모씨와 탈북 및 남한행 문제를 논의했고, 2003년 8월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에 근무할 때 정씨와 동향인 북한 여성에게 정씨의 근황을 물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북측은 유씨의 리비아 행적이 남측 정보기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고 집중 추궁했다. 결국 유씨는 5월 17일 조사에서 시인 진술서를 썼고, 풀려나기 직전에도 '리비아와 개성공단에서의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는 서약서를 썼다. 유씨는 국내에서 "이는 강요에 의해 허위 진술"이라며 "이를 피하기 위해 4월 6일, 4월 23~25일 단식투쟁까지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유씨의 리비아 행적을 파악했다는 대목은 유씨 억류가 북한의 면밀한 검토 끝에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유씨는 억류기간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체류하면서 '1일 3식(평균 9찬)', 수면 등을 보장받았다.
유씨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현대그룹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유씨의 과거 행적을 파악하지 못한 채 채용, 파견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측 인원이 북측 조사를 받더라도 변호사 접견, 조사기간 한정 등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남북 합의를 개정해야 하는 숙제도 남겼다. 현대그룹은 유씨 석방과정에서 북측에 체류비 명목으로 1만5,747달러(1,956만원)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