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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1>노동의 미래-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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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1>노동의 미래-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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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경기 침체의 끝이 서서히 보인다는 전망들이 나오지만 아직은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시작된 뒤 경제 문제의 관심이 온통 침체의 탈출 가능성에 모아졌지만 그 직전까지만 해도 중요 경제 이슈의 하나가 실업문제였다.

특히 일부 국가는 경제가 꽤 성장하고 있었는데도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으며 그 때문에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격렬한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우리나라만 놓고 보아도 청년실업 등 실업문제의 심각성이 성장률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종래의 생각으로는 생산성의 향상과 실업의 증가가 반드시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다. 생산성의 증가는 값싼 제품을 만들게 하고 값싼 제품은 다시 수요를 창출하며 그 수요가 더 많은 생산과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오고 그것이 또 수요의 증가를 이끌어내는 순환이 이뤄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산성의 향상에 따라 비록 몇몇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지라도 저렴한 제품의 수요를 맞추려면 추가 고용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의 경우 경제가 괜찮았던 2001년 3월부터 2003년 9월 사이에 거의 3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1956~1958년, 1980~1983년 단 두 차례 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런스 미셸 경제정책연구소 소장은 "경기 침체가 끝났는데도 경기 침체가 시작됐을 때보다도 일자리가 더 적다"고 말했다.

생산성 증가의 일등 공신은 기술력의 향상이다. 산업화 시기만해도 인간 노동력이 기계와 함께 기본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능적 기계들이 농업, 제조업, 서비스 부문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있다. 기술의 향상으로 공장, 농장, 서비스 부문이 빠르게 자동화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은 기술의 진보와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초래한 인간의 노동에 대해 고민하는 책이다. 1996년 초판이 출판돼 세계 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2004년에는 증보판이 나왔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빼앗고 대량 실업사태를 초래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이 생산하도록 하는 게 기술 및 생산성 향상의 본질이기 때문에 일자리의 감소는 불가피하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 금융 등 일부 분야에서 한동안 일자리가 증가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리프킨은 값 싸고 효율적인 기계가 반복적인 단순 업무에서부터 고도의 전문 업무까지를 담당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앞으로도 대신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현 고용 인원의 일부만으로 상거래를 할 수 있으며 2050년에 가면 전통적 상업부문을 관리, 운영하는데 전체 성인 인구의 5%만 있어도 될 것으로 내다본다.

리프킨만 그렇게 전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만난 최고경영자들도 생각이 비슷해서 전통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50년 후에도 대규모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변수는 있다. 새로운 에너지 시대의 정착과 노동 시간의 감소가 그것이다. 석탄과 증기기관, 석유와 내연기관이 도입됐을 때 고용에서 질적 도약이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에너지 체제의 정착을 앞둔 지금도 수백만의 신규 고용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축소 역시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준다.

리프킨은 이런 변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 인력을 흡수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제3부문을 주목한다. 제3부문은 사람의 기능, 능력, 전문성 등이 활성화할 수 있는 분야로 사회서비스는 물론 건강, 교육, 연구, 예술, 스포츠, 여가활동, 종교, 사회참여 활동 등의 영역을 포괄한다. 리프킨은 바로 이 제3부문에서 향후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제3부문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인간정신을 재탄생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프킨에 따르면 제3부문은 공동체 유지와 재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봉사정신, 형제애적 연대 등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향한 대전환을 가능케 한다. 리프킨이 인간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리프킨은 누구

제러미 리프킨(66)은 미국 덴버 출생으로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학을 編曠?뒤 1994년부터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치밀하고도 대중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비영리조직인'경제교류재단'을 설립, 사회의 공공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엔트로피> (2000), <육식의 종말> (2002), <유러피언 드림> (2004) 등의 저서가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노동의 종말'에 대한 생각들

제러미 리프킨은 기술의 진보에 따른 자동화 등이 인류를 노동자 없는 경제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는 기술의 힘으로 끝없이 발전하리라고 믿었던 인류 문명의 한계를 지적하고 기술과 노동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구했다.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러나 그의 주장이 기술결정론에 빠진 단순 논리라고 반박한다. 기술의 발전만으로 인류의 미래가 행복할지, 불행할지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견해는 기술 그 자체보다 어떤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노동절약적인 기술은 대량 실업 사태를 낳겠지만 반대로 인간중심적인 고용친화기술은 기술과 노동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후자의 사례로 1990년대 중반 유럽연합 차원에서 이뤄진 생산시스템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주목한다. 유럽연합은 당시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자동화가 불가피하다면, 노동자의 숙련된 기술을 최대한 접목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계의 모든 작동 과정을 컴퓨터에 맡기기보다, 인간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여러 상황에서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 교수는 "기술을 개발하기에 앞서 그 기술이 왜 필요하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는 기술 발달의 이중적 성격을 지적하면서 둘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달은, 거시적으로 보면 문명 발전과 생활 양식 개선에 도움을 주지만 생산 과정 혹은 사업장 단위로 보면 노동력의 퇴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명 발전과 실업자 양산이라는 둘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게 중요한데 실은 그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어서 때로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령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종한다면 경쟁과 생산성이 최우선 목표가 되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과 자동화에 따른 노동자 퇴출 및 비정규직의 양산이 별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그것은 매우 절실한 문제가 된다.

생태적인 기술이냐, 반생태적인 기술이냐도 중요하다. 심 교수는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기술이 어느 정도는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생산성 등의 이유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술의 발전과 관련한 시민운동과 언론 등의 감시, 과학기술자와 인문학자의 공동 연구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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