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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어느날 갑자기… 꽉 막힌 혈관의 비명 '폐색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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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어느날 갑자기… 꽉 막힌 혈관의 비명 '폐색전증'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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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인 중 하나는 폐색전증이었다. 폐색전증은 핏덩어리(혈전)나 다른 이물질이 폐동맥을 막은 상태를 말한다. 주로 하지 심부(深部) 정맥(다리에 위치한 깊은 부위의 정맥)에서 생긴 혈전이 폐동맥을 막아 혈액이 폐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호흡 기능이 떨어진다.

혈전과 관련된 질병은 서구에서 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인공관절수술 급증, 식생활 서구화, 고혈압, 복부 비만,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도 크게 늘고 있다.

■ 폐색전증, 다리에서 생긴 혈전이 주 원인

정맥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긴 혈전이 혈관을 막아 혈류 흐름을 차단한 것을 정맥혈전색전증(Venous ThromboembolismㆍVTE)이라고 한다. 심부 정맥을 막는 심부정맥혈전증(Deep Vein ThrombosisㆍDVT), 폐동맥을 막는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ㆍPE), 통증 부종 과색소침착 궤양 등이 나타나는 혈전후증후군(Post_thrombotic SyndromeㆍPTS)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허벅지나 종아리 등 다리의 심부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심부정맥혈전증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다리에서 생긴 혈전이 혈류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폐로 이동해 폐동맥을 막는 폐색전증도 많다.

유럽에서는 정맥혈전과 관련된 질병이 연간 150만건이 넘어섰고, 매년 54만여명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 현재 한국의 정맥혈전색전증 발병 통계 자료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서양의 발병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맥혈전색전증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매우 위험하다. 심부정맥혈전증의 주요 증상으로는 다리 통증과 부종인데 이런 증상도 잘 나타나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심부정맥혈전증은 통증과 다리 궤양을 일으키는 혈전후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재발한 궤양으로 인해 다리를 자르기도 한다.

2년 전 전직 대통령 부인 L씨는 골프 라운딩을 하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제대로 걷지 못했는데 다행히 세브란스병원에서 심부정맥혈전증을 진단돼 수술 후 현재 건강히 살고 있다.

폐색전증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미열과 가슴 통증 등이 생긴다. 때로는 피가 섞인 가래가 기침과 함께 나오기도 한다. 증상 없이 가슴 불편감, 저산소증 정도만 나타나기도 해 진단이 쉽지 않다.

폐색전증의 10~25%는 증세가 나타난 지 2시간 이내 돌연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돌연사하지 않아도 폐포과호흡, 폐 내부 혈관 저항의 증가, 부종 등이 생기면서 허혈 및 심장의 우심실 기능 부전을 일으켜 병원 신세를 오랫동안 지게 한다.

■ '효도 수술'이 정맥혈전색전증 유발

정맥혈전색전증이 생기는 주 원인의 하나는 바로 엉덩이관절과 무릎관절을 바꾸는 인공관절수술(인공관절전치환술)이다.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관절을 인공관절로 바꿔 줌으로써 해당 부위의 통증을 없애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도록 한다. 주로 무릎 관절이 약한 노년층이 많이 수술해 효도 수술이라고도 불린다.

인공관절 수술 과정에서 혈관이 손상되고, 혈류가 느려지며, 혈액 응고 능력이 항진돼 다리에 혈전이 생긴다. 또한 수술로 인해 장기간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혈전 생성의 원인이 된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는 것처럼 혈액도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면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인공관절수술이 정맥혈전 원인이 된다고 해 수술을 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절한 예방 요법을 취하면 정맥혈전색전증을 예방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예방법은 혈액응고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이다.

가장 표준적으로 쓰이는 혈액응고응제제는 주사제인 '저분자량 헤파린'과 경구용인 '와파린'이다. 헤파린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고, 와파린은 36~48시간 뒤 효과가 나타난다. 헤파린이나 와파린은 과량 투여에 의한 출혈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해 투여량에 대한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헤파린은 생리적 응고 저해인자인 항트롬빈3을 통해 트롬빈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항응고 효과를 나타낸다. 부작용으로 혈소판 감소증이 나타날 수 있으며, 3~6개월 이상 장기 투여하면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와파린은 간에서 비타민K 사이클 합성을 저해해 비타민K 의존성 응고 인자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응고를 막는다.

7월 하루 한번 먹으면서 모니터링이 필요 없는 혈액응고억제제(바이엘쉐링제약의 자렐토(성분명 리바록사반))도 출시됐다. 전 세계 1만2,500명을 대상으로 한 RECORD 연구에서 엉덩이관절 치환술을 받은 환자가 자렐토를 먹을 경우 저분자량 헤파린을 주사한 환자보다 정맥혈전색전증에 걸릴 위험성이 70%나 낮아졌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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