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했더니 '역시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죽이거나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하거나, 권총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등 반인권적 수사를 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미 법무부가 24일 공개한 'CIA의 테러용의자 신문활동에 관한 보고서'에서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 AP통신 등 미 언론들은 이 보고서를 인용, 9ㆍ11테러 등의 용의자들이 고문금지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방식으로 다뤄졌다고 보도했다. 언론들은 '잔인한 CIA의 수사방식'등 자극적인 제목을 동원해 그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미 정보기관의 무자비함을 일제히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보고서가 공개되자 CIA의 고문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할 방침이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당초 이 보고서는 2004년 5월7일자로 작성됐으나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에서는 공개되지 않고 묻혀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CIA 요원들은 2000년 발생한 미 구축함 'USS콜'호 폭탄 테러 용의자 아브 알 나쉬리에게 어머니와 가족들을 눈앞에서 성폭행 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가했다.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 미 언론들이 앞서 보도했던 대로 나쉬리에게는 두건으로 덮어씌우고 수갑을 채운 채 장전되지 않은 권총과 전기드릴로 위협하는 방식도 사용됐다. 이런 방식은 용의자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일으켜 사실과 다른 자백을 강요할 수 있어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다.
언론들은 CIA 신문관이 9ㆍ11테러의 주요 용의자인 칼리드 모하마드에게 "다시 미국에서 이런 일(테러)이 벌어지면 너의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겁을 줬으며, 용의자를 질식 직전까지 목을 졸라 정신을 잃으면 흔들어 깨워 고통을 주는 방식도 사용했다고 보고서를 토대로 보도했다. 하지만 신문관 당사자들은 "직접적인 협박은 없었다"며 조사과정의 '위법'을 부인했다. 그러나 WP에 따르면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곧 존 덜헴 검사를 특별검사로 임명, 12건에 달하는 CIA 요원들의 고문금지법 규정위반행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무마됐던 보고서에 대해 특검까지 꾸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자 공화당 의원들과 CIA 인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전 CIA 국장인 마이클 헤이든은 "고문의혹 등에 대해선 이미 검사들의 불기소처분이 내려진 사항"이라며 특검 수사에 대해 당혹감을 표시했다. 존 카일 미 상원 공화당 원내 부대표 등 의원들은 홀더 장관에 보낸 서한에서"이번 조사가 정보기관 종사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비난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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