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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화해를 원한다면

입력
2009.08.3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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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고단했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치적 공과는 별개로 치더라도, DJ는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정치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한 정치인, 그것도 우리 정치사에서 드물게 일관된 주장과 신념을 가졌던 인물의 죽음은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누구보다도 고난을 많이 받은 정치 지도자였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세상과 단절돼 지내야 했으며 한동안 원하는 곳에서 살지 못했다. 그것이 힘 있는 권력이 정치적 라이벌에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이었다면, DJ는 그것 말고도 다른 성격의 폭력을 경험했다.

지역감정,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소문 등이었다. 그런 종류의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범인을 지목하기도, 저항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딱히 그 시작이 어디인지, 어떤 경로로 확산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고 그래서 가해자 혹은 가해 동조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물리적 폭력보다 더 파괴적이고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감정 따위가 초래하는 문제점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의 주장이나 견해에 귀 기울이기보다 출신지 혹은 미리 덧씌운 이념성에 따라 그 사람을 규정한다. 그때 그 사람의 양심과 능력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방해하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가로 막으며 결국 우리의 인식과 안목을 붕괴시킨다. 넓게 보면 그것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세력의 문제가 된다.

지역감정 등을 통해 이익을 누린 세력이 분명히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역감정 등을 은밀히 혹은 노골적으로 부추긴 정치인, 언론인, 학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 가운데는 미국, 유럽 등에서 유학하며 사상의 자유를 만끽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한때 비슷한 이유로 고난을 받았던 사람도 있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그런 주장을 해도 국민이 외면했으면 그만이다. 출신지역과 이념에 기대는 정치인은 뽑지 않으면 그만이고 비슷한 주장을 하는 언론은 외면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선거 때마다 지역성 등이 확인되는 것은, 여전히 많은 국민이 거기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개인적으로는 높은 지적 수준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역감정이나 색깔론 등에는 쉽게 휩쓸렸다. 자신의 계급을 망각한 채 허깨비에 사로잡혀 있었다.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한때는 진보적이었으며, 그래서 세상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것 같았던 40대 후반 내 또래 친구들도, 정치적 성향만은 결국 출신지역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DJ의 죽음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도 화합을 이야기한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거 없이 DJ를 공격했던 사람들까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좀 어이가 없다. 그들이 진정 화합과 화해를 원한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라도 약속해야 한다. 우리 국민 역시 지역감정 같은 전근대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에 더 이상 휩쓸려서는 안될 것이다. 터무니 없는 인식체계는 내다 버리고 좀 더 과학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DJ의 죽음을 계기로 지역감정, 색깔론 등이 사라질 때 우리는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광희 문화전문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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