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임기 만료(내년1월4일)가 다가오면서 미국 경제학자들은 몇 달 전부터 찬반 논쟁을 벌였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상하지 못한 책임,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은행들에게 지나친 혜택을 주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정면으로 그의 재지명을 반대했다. 반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버냉키 의장이 이런 저런 잘못도 했지만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비교적 잘 수습했다며 찬성 쪽에 표를 던졌다.
주목할 점은 이 논쟁에서 버냉키 의장의 정치적 성향은 ‘논외’였다는 점이다. “버냉키는 공화당 사람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정말 일을 잘 처리했다”며 그의 연임을 지지했을까.
25일 버냉키를 차기 의장으로 재지명한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오직 능력과 성과로, 정치 아닌 시장의 잣대로 그를 최종 선택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정치인인지라 챙겨줘야 할 사람도 많았겠지만, 연준의장 자리만큼은 당파나 연고를 초월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뿌리 내린 전통이었다. 전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공화당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처음 임명됐지만 이후 민주당,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와중에도 무려 19년간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그린스펀의 전임 폴 볼커 의장 역시 1979년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됐지만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뀐 후에도 재지명되며 8년 동안 통화당국을 이끌었다.
정권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뀌면 사람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안 그런 자리가 몇 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에 정파란 없다’는 진리가 비단 미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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