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마스크로 무장한 그들에겐 얼굴이 없었다. 누군가는 있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누가 됐든 '그 분'이 잘 가시는 데 도움이 되면 그뿐이다. 50명 정도 되는 '현충원 의장대' 장병들은 그들의 임무가 그러하듯 주목 받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
"행사복(각군 의장대 제복)을 입으면 웃음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하윤호 병장은 미소 띤 얼굴로 얘기하는 것조차 혹시 사진에 찍힐까 주위를 살폈다.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 및 안장식을 지원했던 현충원 의장대원들은 석 달 사이 두 명의 전직 국가원수의 마지막 길을 모두 함께 한 몇 안 되는 '주인공'들이다.
의장대 선발은 어떻게 이뤄질까.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장대대(국방부 의장대)에는 현충원 의장대를 비롯해 삼군통합의장대, 전통의장대 등이 있다. "각 군별 훈련소에서 지원자 또는 적격자를 대상으로 선발합니다.
어느 경우에나 엄격한 심사를 거칩니다." 소대장인 박희명 상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키 180㎝ 이상에 용모가 준수해야 하고, 가치관, 국가관, 심성 등도 세밀히 살핀다. 국내ㆍ외 요인들이 참석하는 행사가 많기 때문에 별도의 신원조회도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들어온 신병들을 대상으로 대원들은 집중 조련에 나선다. 일반인들 앞에 서 있을 때가 많은 의장대는 모름지기 '자세'가 전부다. 선 자세에서의 손가락, 주먹 모양, 턱이 들어가는 정도, 양 팔과 다리의 위치 등은 물론 시선 처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교정이 이뤄진다.
소대장 김상구 하사는 "먼 곳을 응시하는 의장대원 정면에 서서 일부러 똑바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간혹 있다"며 "그럴 땐 당황해서 급하게 시선을 돌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코 부분을 응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모든 의장대의 공통 분모인 자세를 제외하면 현충원 의장대는 여타 의장대와 다른 길을 걷는다. 주 임무는 중요 인물에 대한 안장행사를 비롯해 외국 귀빈의 서울현충원 참배행사 및 각종 추도식 지원이다. 늘 주인공인 호국영령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전쟁기념관 등에서 총ㆍ칼을 이용한 화려한 동작시범을 펼치는 의장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도 적다.
현충원 의장대가 받는 훈련은 태극기 접는 법, 조총 훈련, 관 운구 훈련 등이다. 연습용 관을 만들어 운구하는 연습도 하는데, 실제보다 다소 무거운 200~250㎏ 정도의 관에는 모래주머니를 넣거나, 실제 병사가 들어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 의장대의 일은 고될 수밖에 없다. 영결식장이나 분향소에서는 길게는 3~4시간씩 서 있어야 한다.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따가운 햇볕에 노출된 상태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자세가 중요한 탓에 제복은 각종 벨트로 꽉 조여지고, 겨울에도 두꺼운 옷은 물론 두툼한 방한 장갑도 낄 수 없다.
'각'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일 병사의 컨디션을 살펴 임무에 배치하는 것도 지휘관들의 중요한 일이다. 주말에도 자주 행사가 열리는 탓에 휴일도 불규칙하다. 조그만 '낙'이라면 행사에 투입될 땐 이병이나 일병도 모두 병장 계급장을 달도록 한다는 점이다.
장례행사 속 의장대원들의 걸음걸이는 보는 이에 따라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느리다. 김상구 하사는 "엄숙하고 경건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병사들의 발이 꼬여 임무를 망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장ㆍ국민장의 경우 10명(후방 중앙에서 통솔하는 간부까지 포함해 '10분의 1명'이라고 표현한다)이, 그 외는 8명의 병사가 투입되기 때문에 서로 몸이 거의 붙은 상태에서 관을 옮긴다. 여기에 앞뒤로 각각 두 명씩 호위병이 붙고, '전열 호위'와 관 사이에는 각각 영정과 훈장을 든 병사가 선다.
5월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23일 김 전 대통령 국장은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됐다. 국장, 국민장에는 모든 대원들이 투입된다. 23일 국장 영결식까지 치르고 24일 전역한 병사도 있다.
과거 국군 통수권자였던 분들에 대해 이들이 마지막으로 표하는 예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의 관을 모두 운구했던 정해도 일병은 "나라의 큰 어른이 잇따라 서거하셔서 안타까운 마음이 우선이지만 그 마지막 길을 제 손으로 도와드렸다는 점에서 큰 영광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상구 하사는 "자기 집 제사도 이렇게 정성을 다해 모시기는 힘들 것"이라고 대원들을 격려했다. "존경스러운 분들이기에 착잡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서 더욱 마지막 길을 잘 모시려고 힘들게 준비했습니다."
현충원 의장대의 임무 성격 상 대원들은 자연스레 삶과 죽음, 국가에 대한 생각도 깊어진다. 이 때문에 마음의 키는 푸른 창공을 지키는 전우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전우 부럽지 않게 훌쩍 자란다.
서요한 병장은 "아직 어리지만 점점 그 분들의 희생 정신, 국가에 대한 봉사를 떠올리면서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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