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진영욱 사장을 비롯한 한국투자공사(KIC) 직원들에게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수익률 플러스. 2006년 말 첫 투자에 나선 이후 근 3년 만에 투자 원금을 회복한 것이다. "아니, 내로라는 전문가들이 나랏돈을 굴리면서 이제 겨우 원금을 만회한 게 무슨 대수냐"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틀린 지적도 아니다. 게다가 수익률 플러스 전환에는 올 들어 급속히 개선된 시장 상황의 덕이 상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폄하할 순 없다. 그간 투자 실패와 실적 부진에 쏟아졌던 온갖 여론의 비판을 감안하면, 적어도 그들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을 터. 무엇보다 절대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사실보다 올해 처음으로 기준 수익률(벤치마크 수익률)을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 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상당한 운용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2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외환보유액 등을 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용하는 우리나라의 국부펀드격인 KIC는 2006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를 하는 이른바 포트폴리오 투자에 총 228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달 3일 이후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수익이 난 금액이 1억달러 내외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작년에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했다.
특히 기간 수익률의 변신은 눈부시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융단 폭격이 투하됐던 작년 수익률은 –14.52%. 절대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 수익률(-13.86%)에도 못 미쳤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말하자면, 주가지수가 10% 떨어질 때 투자 수익률은 이보다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올 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스캇 칼브를 올 초 최고 투자책임자(CIO)로 영입, 투자 라인업을 새롭게 구축하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것. 특히 상반기 수익률이 4.52%를 기록했는데, 무엇보다 벤치마크 수익률(3.57%)을 크게 능가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KIC 박종인 경영전략팀 부장은 "정부와 한국은행에서 해마다 평가를 할 때 절대적인 수익률이 아니라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며 "투자를 시작한 이래 벤치마크를 넘어서는 수익률을 낸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포트폴리오 투자 외에 전략적 투자까지 감안하면 아직 전체 원금을 다 회복하지는 못했다. 작년 초 전략적 투자의 일환으로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게 원인. 그래도 한 때 70%가 넘는 손실을 냈던 데 비해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메릴린치를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주가가 점차 상승하며 현재 원금 60% 이상을 회복한 상태다.
다시 출발선상에 선 KIC는 새로운 변신을 모색 중이다. 정부로부터 올해 추가로 위탁 받게 될 50억달러 중 10억달러는 해외 부동산이나 헤지펀드 등 고위험 고수익 분야에 투자하는 대체 투자로 운용될 예정. 여기에 진 사장은 최근 "포트폴리오 투자의 구성도 재조정을 해서 6대 4인 채권과 주식 비중을 5대 5로 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망은 나쁘지 않다. 정부 한 인사는 "국내에서 해외 직접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민간 기관인 미래에셋을 제외하면 KIC가 유일하다"며 "점차 안정적인 운용 능력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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