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이번 여름에는 꼭 지리산 종주 떠나는 거다. 알지?"
남편은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아들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해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남편은 등산을 무척 즐기는 사람입니다. 6년 전 금연을 하고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어떤 운동보다 좋은 운동이라며 누구에게나 권한답니다. 처음에는 금연하고 혼자서 등산을 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제가 같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만 나면 등산을 하자는 남편이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남편 혼자 등산하는 경우도 많은데, 남편이 특히 즐기는 것은 무박(無泊)을 하며 종주하는 것입니다.
종주란 산의 한 봉우리만 달랑 다녀오는 것이 아니고 그 산의 전체를 다 등산하는 것이고, 무박이란 산장에서 편히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등산을 하다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바로 그곳에서 매트를 깔고 침낭만 펴고 잠을 청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밤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을 청하는 것이지요.
남편이 메는 배낭은 야생의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담다 보니 무게가 아무리 줄여도 25㎏입니다.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종주를 떠나는 남편을 볼 때면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힘든 일을 하나 싶거든요.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리산 2박3일, 설악산 2박3일, 덕유산 1박2일, 주작, 덕룡산 1박2일 등 종주를 떠나는 남편을 저와 아이들은 항상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지난해부터 두 아들을 데리고 꼭 지리산 종주를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성격이 활달한 둘째는 부담 없이 그러자고 하는데 큰 아이는 싫다는 겁니다. 더운 여름, 그냥 있어도 더운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뭐 하러 산에 오르냐는 겁니다. 씻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것도 싫다는 겁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종주를 하면서 얻는 게 얼마나 많은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자연과 벗삼아 산을 오르고 힘들 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위대한 자연을 몸으로 느끼다 보면 자신에 대한 성찰도 할 수 있고, 그 힘든 종주를 마치고 나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라는 자신감이 생긴단다. 아빠 소원이다. 같이 가보자."
결국 두 아이는 같이 가기로 했지만 아쉽게도 하필 비가 내려 지난해에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방학도 고작 1주일이고 더더욱 함께 할 시간이 없더군요. 내키지 않아하는 큰 아이를 설득해서 8월 1일로 날을 잡았습니다.
준비할 게 꽤 많더군요. 각자의 배낭에 여벌 옷과 우비, 전조등, 나침반, 비상약, 장갑 등 기본적인 것들을 넣고 매트리스에 침낭, 침낭커버, 슬리퍼 등 취침에 필요한 것들을 넣으니 족히 20㎏가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남편은 평상시 종주 때 아침과 점심은 빵과 스프로 해결하고 밤에는 냉동식품으로 된 고기를 가져갔었는데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밥을 가져 가면 부수적으로 가져가야 할 게 많아집니다. 그래서 두 아이는 그냥 평상시 남편이 먹는 것처럼 먹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그날이 밝았습니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걱정스럽더군요. 특히 먹는 게 예민해서 몸이 왜소한 큰아이가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다 쓰러지지는 않을지, 혹시 다쳐서 오는 건 아닐지 마음이 너무도 불안했습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씩씩하게 잘 다녀올게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베낭을 메고 가는 모습에 괜히 눈물이 나더군요.
아이들을 보내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산에 오르기 전 한 번의 전화가 오고 오후 5시가 넘어 지리산 천왕봉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생각 외로 맑은 목소리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다시 밤 9시경 잠을 잔다고 전화가 왔어요.
"엄마 여기 별이 정말 많아요. 하늘의 별들이 저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어요. 별들이 그대로 쏟아질 것 같아요."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소 지친 듯 했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여긴 너무 추워요. 얼른 집에 가고 싶어요."
중산리에서 시작한 지리산 종주를 성삼재 휴게소에서 마무리 한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직접 마중을 가기로 했습니다.
3일째 오후 4시께.
성삼재 휴게소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아이들이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다리는데 저쪽에서 두 아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스틱을 두 손으로 잡고 그 무거운 베낭을 메고 바닥만 쳐다보고 부지런히 내려오는 게 보이더군요.
너무 반가워 뛰어갔지요. 지치고 힘든 모습이었지만 저를 보고 활짝 웃어주는데 너무 대견했습니다.
"왜 바닥만 보고 그렇게 열심히 걸었어?"
"앞을 보면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구나 싶어서 힘이 빠지니까요."
한 번씩 꼭 안아줬습니다.
"첫날 잠을 자는데 다음날 아침에 못 일어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침에 눈이 떠지는 거 있죠. 포기하지 않으니까 종주하게 된 거에요."
2박3일이 제 아이들을 더 많이 자랄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았습니다. 저 아래 구름을 보면서 구름 위를 걸었다는 아이들, 산에 대한 웅장함과 신비함을 알게 되었다는 아이들, 시작이 있음에 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아이들, 끝없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아이들을 보면서 함께 해준 남편이 고마웠고 건강하게 잘 다녀와준 아이들이 고마웠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아빠랑 셋이서 와 보고 싶어요."
큰 아이의 말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종주의 후유증으로 남편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면서도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친 아이들이 너무 대견스럽다면서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랑을 한답니다.
이번 여름의 기억이 아이들에게 영원히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 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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