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다. 툭 하면 '사상 초유'의 사태, '벼랑 끝' 위기를 맞는다. 스스로 초래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검찰이 정치ㆍ사회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금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로 위기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에게 검찰의 일대 개혁과 쇄신, 그리고 그것을 이뤄낼 비전과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지연ㆍ학연에 자유로운 검찰총장
김 총장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야말로 서울 사람이다. 전국의 수재가 모인 경기고를 나왔다. 이력을 보니, 검사로서 정치 권력의 수혜를 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출세 코스로 통하는 보직을 맡은 적이 없다. 검찰 출신 인사들은 그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성실하며, 업무에 관한 한 원칙주의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검사 김준규'의 그런 태도는 아마 총장직 수행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 영남 인사 편중, 호남 인사 차별 논쟁이 벌어진 것처럼, 검찰에서도 대구ㆍ경북(TK)과 부산ㆍ경남(PK), 호남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해당 지역 출신 검사들이 출세 가도를 달려 검찰 내 분열과 반목의 원인이 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 행태가 잔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이른바 검사의 정치화, 정치화한 검사의 양산, 그를 통한 검찰의 정치 권력 예속 현상이다.
특정 지역ㆍ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능력이나 자질과 상관 없이 승승장구한 예는 검찰 내에서 허다하다. 권력 주변을 기웃거려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같은 지역ㆍ학교 출신 후배를 출세 코스에 앉히는 식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니 권력과 금력에 대해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나 엄정한 처벌을 다짐했지만, 표리부동(表裏不同)이 다반사였다.
김 총장의 출신 지역ㆍ학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껏 서울 사람이, 경기고 출신들이, 적어도 검찰 내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줬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 총장은 지연ㆍ학연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김 총장은 정권의 지역적 색채가 검찰에 투영되지 않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에 가깝다. 지연ㆍ학연을 배제하고 검사들을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능력과 자질로 평가하고 적재적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김 총장이 권력 지향형 검사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없애고, 대신 '진정한 칼잡이'가 되려는 검사가 쑥쑥 클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면 검찰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검사들이 수사에 대한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준사법기관이자 독립된 관청인 검사가 '검사 동일체 원칙'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갇혀서 하고 싶은 수사를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수사를 해야 하는 폐단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표적 수사''곁가지 수사''봐주기 수사'의 멍에를 결코 벗어 던질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검찰청법에 명시돼 있으면서도 현실성이 없는 '이의 제기'조항을 보다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게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국민만 바라보는 검사 육성하길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는 거기서부터 싹트는 것 아닐까. 검찰이 법의 추상같은 엄정함과 봄볕같은 따스함을 국민 앞에 공평무사하게 보여 준다면 검찰의 결정과 처분을 수긍하지 않을 이는 없다. 물론 그것은 검사가,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공복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는 순간부터 가능한 것이다.
김 총장은 대전고검장 퇴임사에서 "유명한 검사보다 유능한 검사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말로 25년 검사 생활을 회고했다. 김 총장은 이제 유명함보다 유능함을 추구하고, 권력보다 국민을 바라보는 검사들을 육성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 김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 2년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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