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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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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껌

입력
2009.08.2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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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주차장을 막 빠져나가려는데 차 보닛 위에서 무언가 반짝 빛났다. 누군가 씹다 뱉은 껌. 중간에 차 세우기도 그렇고 내처 집까지 가기로 했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그런 것처럼 정중앙에 동그랗게 붙어 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늘 주차하던 자리인데 다른 차가 먼저 서 있어 화가 났을 수도 있다. 무거운 박스를 들고 주차된 차 사이를 빠져나가려다 중간에 몸이 걸리고 문득 짜증스러워져서 화풀이를 했을 수도 있다.

뭉친다고 뭉쳤지만 잇자국이 남아 있는 껌. 씹히고 씹혀 단물 다 빠진 껌. 정중앙에 붙은 껌 때문에 차선에 걸치지 않고 바로 운전할 수 있다. 문득 코미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얌전해보이는 아가씨가 맞선 자리에서 상대편 남자에게 고백한다. "한때 껌 좀 씹었어요." 어떤 전형이기라도 하듯 드라마나 영화 속 비행 청소년들은 껌을 질겅댄다. 빨갛게 칠한 입술과 짝짝 소리내 껌 씹는 것이 다방 여종업원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니 자신의 육학년짜리 아이가 별안간 껌을 씹어대자 엄마가 불안해진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그 엄마는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까지 했다고 한다. 어디로 분출해야 할지 모르는 반항심을 껌 씹기로 풀어내고 있는 거라고 좋은 일이라고 했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껌을 떼어낸다. 말랑말랑한 껌. 껌을 씹는 동안 말랑말랑해졌을 화(火).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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