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다 양복을 입는 줄 알았다. 장롱에는 늘 아버지의 양복들이 빽빽이 걸려 있었다. 비슷해보이는 양복이 유행을 탄다는 것도 알았다. 칠십이 한참 넘은 아버지는 지금도 양복의 유행을 꿰고 있다. 시절에 따라 조끼를 받쳐입기도 하고 단추가 두 줄 달리거나 상의 길이가 달라졌다. 어머니는 양복을 '입는다'라고 하지 않고 꼭 '빼입는다'라고 말했다. 그랬기에 어느 여름방학, 농촌의 이모집에 놀러갔다가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옷장 앞에서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모부에게는 단 한 벌의 양복도 없었다. 홍대만큼 남자들의 복장이 자유로운 곳도 없다. 쇠사슬이 달린 가죽옷이나 코스프레로밖에는 이해되지 않는 차림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단 양복을 잘 빼입은 남자만큼은 모든 이들의 눈길을 한번에 사로잡는다. 어느 저녁이었다. 그날 모임의 남자들은 모두 양복을 입었다. 식사 전 남자들이 일제히 양복 상의를 벗느라 좀 분주해졌다.
누구는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고 누구는 나무처럼 생긴 옷걸이에 걸었다. 여기저기 걸린 양복 상의들. 브랜드도 다 다르고 색상도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왠지 유니폼의 느낌이 났다. 목 부분이 봉에 꿰어 불편하게 늘어졌다. 양어깨에 들어간 두꺼운 심 때문인지 식사 내내 벗어둔 양복 상의들은 여전히 군기가 바짝 든 것처럼 보였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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