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슈뢰더 지음ㆍ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 발행ㆍ전 2권ㆍ각 권 3만5,000~3만8,000원
탐욕과 무자비의 거리 월스트리트에서 '구루'(스승, 현인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불리는 사내가 있다.
투자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79) 회장. 채 몇 년을 버텨내기 힘들다는 월스트리트에서 그는 지난 40여년 동안 정상을 지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버핏의 개인 재산은 약 600억 달러. 65억 세계 인구 중 1위다. 물려받은 밑천도, 거대한 조직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판단으로 일군 결과다. 그의 말과 행동은 곧 뉴스가 되는데, 아마도 가장 컸던 것은 재산의 85%를 조건 없이 기부키로 했다는 소식일 것이다.
<스노볼> 은 버핏의 삶과 비즈니스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으로,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앨리스 슈뢰더가 버핏의 부탁을 받고 썼다. 버핏은 저자가 책을 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그에게 무제한의 인터뷰와 자료 열람이 가능한 독점적 권한을 줬다. 부분적으로 버핏을 다룬 수많은 책들과 달리 <스노볼> 에 전기(傳記)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국내 번역판이 1, 2권을 합쳐 1,84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이 전기에는 '가치 투자'로 상징되는 버핏의 투자법과 함께 그가 걸어온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그리고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던 사생활이 바투 묘사돼 있다. 스노볼> 스노볼>
현인에 의해 간택된 저술가답게, 슈뢰더는 글솜씨뿐 아니라 만만찮은 강단을 보여준다. 버핏은 저자에게 "내가 말한 내용과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이 다를 때는 아첨이 덜한 쪽으로 써 달라"고 당부했는데 슈뢰더는 그 당부를 지킨다. 월스트리트의 거인을 넘어 만인의 현인이 된 버핏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이렇다.
"대외적으로 버핏은 소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천재처럼 비쳤다. 하지만 매우 복잡한 삶을 살았다. 집을 다섯 채 가지고 있었지만 두 채에만 거주했다. 어쨌거나 버핏에게는 아내도 두 명이었다… 버핏은 자기가 성공한 것을 몇 개의 단순한 투자 원칙을 집중적으로 실천한 덕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면, 똑같이 평생을 그렇게 산 사람들은 어째서 버핏처럼 돈을 벌지 못했을까?"
'스노볼(snowball)'이라는 제목은 가치투자ㆍ장기투자를 강조하는 버핏의 투자 철학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한 줌의 눈 뭉치를 꾸준히 굴리다보면 커다란 눈덩이가 되듯 "투자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습기 머금은 눈과 진짜 긴 언덕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것이 버핏의 지론이다. 저자는 인터넷 기업의 과열이 절정에 달했던 1999년, "막차까지 다 놓친 시대착오자"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거품'을 경고한 버핏의 모습을 통해 그 일단을 보여준다.
"버핏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주식 시장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경제적인 산출 결과를 반영할 뿐이라고 했다… 어떤 분노 혹은 분개의 감정이 강연장 바닥에 흘렀다. 1999년 선 밸리에서 주식 시장의 과열을 경계하라고 설교하는 것은 사창가에서 순결을 설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버핏의 연설을 듣고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우쳤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빌 게이츠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책에 따르면 버핏은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버핏은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을 인식하고 또 금을 그어놓고 그것을 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그가 반 세기 넘게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전후의 호경기부터 최근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버핏의 판단과 행동력, 일부일처제를 벗어난 솔직한 사생활, 부자에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 등 버핏의 모든 것을 오롯이 담아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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