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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장 속도와 피곤한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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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장 속도와 피곤한 지구

입력
2009.08.2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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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부르터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무리해서 그렇고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한자풀이도 곁들였다. 휴식(休息)의 앞 글자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옆에 있는 형태로, 나무 옆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라고 했다. 피곤(疲困)에서 곤(困)은 좁은 공간에 나무가 갇혀있는 형상으로, 작은 공간에서 복작거리면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분석이었다.

한술 더 떠 영어에서 숲을 뜻하는 forest 역시 'for rest' 가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영어 어원사전을 찾아보니 이 부분은 사실무근이었다.) 감기(感氣)는 기운 혹은 체온이 떨어지는 것으로 영어의 cold와 의미가 유사하고, 체온이 36.5도를 유지하는 것은 1년이 365일이 되는 우주의 이치와 궤를 같이한다고 했다. 한 의사의 설익은 철학이기는 하나 "몸을 막굴리거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면 탈이 난다"는 충고로는 받아들일 만했다.

지구촌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여름 비가 내리는 유형을 관찰해보면 아열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기후대가 달라진 듯하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다가 볕이 쨍쨍해지고, 장마는 사라졌다. 대만에서는 한꺼번에 3,0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엄청난 피해가 났고, 늑장대처를 했다는 이유로 정권이 위태롭다. 성장을 앞세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다 지구를 피곤하게 한 탓이다.

대안이 녹색성장이란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녹색성장에 시동을 건 지 1년이 지났다. 덕분에 유엔환경계획(UNEP)도 20일 "한국은 녹색성장을 달성하려는 세계적 노력을 솔선수범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과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정부 각 부처가 녹색성장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지만 기실 '녹색'과 '성장'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개념을 적절히 배합하기가 쉬울 리 없다. 성장이 지구촌을 훼손해왔는데, 이를 극복하는 방식이 다시 녹색 포장을 한 '성장'이라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뒤늦게라도 녹색에 관심을 두게 된 것만큼은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아무래도 녹색보다는 성장에 무게가 실린 듯하다.

끝없이 성장을 해야 경제가 돌아간다면 환경은 계속 파괴되고, 지금보다 더욱 무서운 재앙이 기다린다. 자전거가 굴러가려면 자꾸 페달을 돌려야 하지만 종착점은 불행히도 낭떠러지라는 것이다. 최근 50여년 동안 지구는 전체 숲의 3분의1, 토양의 4분의1, 경작 가능한 땅의 5분의1을 잃었다고 한다.

아마존에서는 벌목으로 한 마을 사람들 전체가 눈이 멀어버린 경우도 있다.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갑자기 햇볕에 과다하게 노출되면서 시력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계속 불어나고 각국이 성장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한 피곤해진 지구가 사람들에게 더욱 앙탈을 부릴 것이 확실하다.

20년간 병상에 누워있던 아내와 동반자살해 충격을 줬던 '유럽의 지성' 앙드레 고르는 저서 <에콜로지카> 에서 "성장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판매하기 위해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욕망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욕망과 필요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장속도를 늦춰 지구를 쉬게 하자는 것이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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