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2시30분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 상황실. 100인치 모니터 3대에는 위성사진, 일기도, 각 지역의 강수, 기온, 풍향, 풍속 등 자료가 복잡하게 떠있다. "내일 비가 언제 시작할 것 같습니까?" 진기범 예보국장이 묻자 자료와 모니터를 번갈아 살피던 김남욱 예보관이 "구름과 풍속 등을 보면 새벽 3시 이후가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진 국장이 되물었다. "일기도를 보면 서해 5도 북쪽은 오늘 밤부터 비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요?" "하지만 위성자료를 보면 수도권에서는 새벽부터 비가 시작돼 출근시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 예보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10여명이 한 조가 돼 12시간씩 4교대 근무하는 예보국에선 이런 '토론식' 회의가 수시로 열린다.
기상청 상황실은 날씨와의 전쟁터다. 전국 5개 지방기상청과 45개 기상대, 540여개 자동기상관측장치(AWS)와 기상위성에서 24시간 수집되는 자료만도 일기도가 수 만 장, 관측수치 용량은 300메가바이트에 달한다. 예보관들은 이를 바탕으로 매일 오전 7시50분과 오후 2시30분 정례회의를 여는 것 외에도 각 지역의 예보관들과 쉴새 없이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지난해 여름 6주 연속 주말 예보가 빗나가면서 '오보청'이란 조롱까지 들었던 기상청이 올해는 확 달라졌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여름철 폭우 예보가 시기 뿐만 아니라 강수량도 대부분 적중했다.
올 여름 서울에 처음 폭우가 내린 지난달 9일 150㎜로 예상해 실제 강수량(190㎜)에 거의 근접했고, 태풍 '모라꼿'의 진로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예보도 정확했다. 덕분에 지난해 80%를 밑돌던 예보 적중률은 올해 85% 이상으로 올랐다.
진 국장은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 덕분이지만 아찔했던 순간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올해 5번 틀렸다"며 수첩에 꼼꼼히 적어둔 기록을 보여줬다.
올 여름 직전만 해도 기상청은 매년 반복되는 '오보 악령'에 시달려야 했다. 5월11일 일어난 AWS 고장 때문이었다. 이날 강화 지역에 10~20㎜의 단비가 내렸는데, AWS 오작동 탓에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고 황당한 오보를 내고 호우특보까지 발령한 것. 명예회복을 다짐하던 기상청으로선 "시작부터 꼬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예보관들은 더욱 바짝 고삐를 조였다. 오보가 나올 경우 다시 자료를 꺼내 분석하고 토의했다. "낮은 점수 받은 시험지를 다시 꺼내 보는 거 싫잖아요. 오보 자료도 마찬가지죠. 그래도 왜 틀렸는지 알아야 성적이 오르겠죠." 진 국장은 "예보관들이 오보 냈던 일기도 너댓 개는 자다가도 일어나 똑같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되짚어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찔한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육명렬 예보정책과장은 지난달 15일 개통한 경춘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 고속도로 개통에 앞서 12일 자전거 달리기 행사와 마라톤 행사가 예정됐는데, 분석결과 시간당 30㎜ 이상의 호우가 예상됐다.
기상청의 설득으로 자전거행사는 취소됐지만 4,500여명이 참가한 마라톤 행사는 실제 시간당 30~40㎜의 폭우 속에서 진행됐다. 육 과장은 "다행히 사고가 없었지만 행사 내내 마음을 졸였다"면서 "몇 개월 전부터 계획된 행사를 취소하게 할 때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500여명의 사망ㆍ실종자를 낸 태풍 '모라꼿'도 기상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기상청이 예상한 태풍 경로가 일본 등 주변 국가의 예측과 달랐기 때문.
일본 등은 모라꼿이 대만을 거쳐 서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리는 대만을 빠져 나와 중국에서 비를 뿌리며 약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모라꼿은 우리 기상청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생긴 제주태풍센터가 처음부터 태풍을 집중 마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12일 예보도 아슬아슬했다. 기상청이 '모라꼿'의 영향으로 중부지역에 300㎜ 이상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지만, 전날까지도 하늘은 성긴 구름만 보일 뿐 조용했다.
저녁 8시께 언론사에서 확인전화가 밀려왔고, 비상근무에 들어간 관공서 공무원들도 "비가 오지도 않는데 기상청 때문에 집에 못 간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예보는 정확했다. 진 국장은 "예보를 확신하긴 했지만, 행여 틀리면 어쩌나 싶어 뜬 눈으로 상황실을 지켰다"고 말했다.
기상관측은 고도의 과학이지만 결국 예보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상황실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김 예보관은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두 대의 슈퍼컴퓨터가 쉴새 없이 돌아가지만, 최종 판단은 예보관의 몫"이라며 "아무리 기계가 똑똑해져도 예보관의 경험과 노하우를 따라올 컴퓨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보관을 오래 하면 자연을 경외하게 된다"며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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