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마냥 그립기만 했던 시절, 하늘로 치솟는 비행기라도 보려 공항 옆에 우두커니 서있었던 적이 있다. 육중한 깡통 같은 몸체가 어떻게 하늘로 오를까 신기해 하면서 비상하는 비행기에 여행의 꿈도 함께 실어 보냈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비행기 구경의 최적지일 뿐 아니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과 바로 이어지는 공항전용고속도로 덕분이다.
조만간 인천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도 연결된다. 11.7km의 긴 구조물은 이미 뭍과 섬을 연결하고 있다. 포장 등 마무리 공사가 끝나는 10월 영종도로 가는 또 다른 길이 뚫리게 된다.
이미 가깝고, 더 가까워질 영종도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멍하니 비행기만 바라보기엔 너무나 볼 곳도, 할 것도 많은 섬이다. 아름다운 해변에서의 해수욕이나, 낮지만 1,000m급 산 이상의 조망을 선물하는 섬 산 등반을 즐길 수 있다.
영종도에서 떠나는 또 다른 섬 여행도 매력적이다. 지금도 개발의 굉음이 일고 있는 섬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파편처럼 남은 영종도의 낡은 추억을 찾는 것도 색다른 즐길 거리다.
■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 즐기기
영종도에 오는 이들이 공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용유도의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수욕장이다. 용유도와 영종도는 서로 떨어져 있다가 두 섬 사이에 간척을 통해 공항이 만들어지면서 연결됐다. 공항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찾는 이 극히 드물던 두 해수욕장은 이젠 해운대 못지않은 유명 해수욕장으로 거듭났다. 붉게 물드는 석양으로 유명하다.
한여름 주말이면 해수욕장 입구는 밀려든 차량으로 오도가도 못할 지경이다. 여름이 아니더라도 해수욕장 주변에는 조개구이와 회를 즐기기 위한 행락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젠 한적한 옛 백사장의 느낌을 찾기 어려워진 곳들이다.
두 해수욕장을 잠깐 비켜가면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해변을 만난다. 선녀바위가 있는 바닷가다. 갯바위 전시장처럼 크고 작은 갯바위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황토색 선녀바위를 멀리서 보면 장옷을 입고 선 여인을 닮았다. 선녀바위 해변과 이어지는 마시안, 용유해변은 백사장은 없지만 갯벌을 체험하며 보다 한적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 영종도에서 배 타고 떠나는 또 다른 섬 여행
영종도에 온 차량들이 두 해수욕장 다음으로 길게 줄 선 곳은 잠진나루와 삼목선착장 입구다. 철부선에 실려 바다 건너 또 다른 섬, 무의도나 신도 시도 모도 등으로 향하는 나들이객 때문이다.
영종도 해변에서 보이는 무의도는 묵직한 산 덩어리가 바다에 던져진 듯한 모습이다. 호룡곡산(246m)과 국사봉(230m) 2개 봉우리가 이어진 산자락이 바다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그 모습이 무희의 옷자락을 닮았다고 해서 무의도(舞衣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무의도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오르는 섬 산행이다. 무의도 산행의 기점은 선착장과 가까운 큰무리마을로 삼는 게 좋다. 이곳에서 시작해 국사봉과 호룡곡산의 정상을 밟은 뒤 하나개해수욕장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정석이다.
국사봉 정상에서 보는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도의 풍경도 좋지만 호룡곡산 정상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소무의도 팔미도 대부도 영흥도 대이작도 자월도 승봉도 덕적도 등 인천 앞바다가 품은 섬들이 보석처럼 펼쳐진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아름다운 숲길인 '환상의 길' 코스를 통해 내려와 만나는 하나개해수욕장은 많은 TV드라마의 촬영 무대이기도 하다. 백사장 한쪽에는 '천국의 계단' '칼잡이 오수정'의 촬영 세트장이 남아 있다.
무의도 바로 옆의 실미도는 동명의 영화 덕에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곳은 실제 상황이 벌어졌던 장소였고 영화 촬영지이기도 하다. 실미도와 무의도는 하루 2번 물이 빠지면 4, 5시간 동안 연결돼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잠진선착장 무의해운 (032)751_3354
삼목선착장이 연결하는 섬은 신도 시도 모도 잠봉도다. 신도와 시도 모도는 다리로 서로 연결돼 있어 신도까지만 가면 3섬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잠봉도는 배를 한번 더 타야 갈 수 있다.
신도와 시도 등은 드라마 '연인' '풀하우스' '슬픈 연가' 등의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서 낭만을 키우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오래된 염전인 시도염전과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는 수기해수욕장이 가장 큰 볼거리다. 모도의 끝쪽 배미꾸미 해변엔 성을 주제로 한 조각공원이 있다. 삼목선착장 (032)884_4155
■ 영종도의 낡은 추억을 찾아서
섬의 북쪽 끝에 예단포란 포구가 있다. 불도저가 갈아 엎는 들판을 지나 공사 먼지 자욱한 길을 달려가야 만날 수 있다. 분단이 되기 전만 해도 영종도에서 가장 풍족했던 마을이다. 30~40척의 큰 배들이 출항을 기다리며 포구를 가득 메웠고, 조기철이면 이곳에서 수백 척의 배들이 집결해 조기 파시가 열리곤 했다.
일제 땐 경찰 주재소까지 있던 마을이지만 개발의 파도에 휩쓸려 이젠 다 스러져가고 있다. 예단포를 중심으로 한 운북종합레저단지 개발로 수십 채가 있던 마을은 그 흔적도 찾기 어려워졌고 고깃배 몇 척 묶인 포구가 덩그러니 남았다. 한적하단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들만 포구의 갯벌에서 여유로이 조개를 주울 뿐이다.
영종대교가 연결됐지만 굳이 배편으로 영종도를 찾는 이들이 있다. 주로 인천 시민들이다. 월미도에서 영종도선착장 구읍배터로 배를 타고 오면 멀리 고속도로를 돌아오는 것보다 휠씬 빠르다.
구읍배터 주변도 복합문화단지 개발로 어수선하다. 배터와 가까이 있는 세계여행문화원 역시 공사가 끝날 때까지 문을 걸어 잠갔다. 한국에서 세계 여행의 문을 연 고 김찬삼 교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여행 박물관이다.
구읍배터 옆 공사장 칸막이의 작은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어시장을 만난다. 몇 안 남은 점포들이 회도 팔고 말린 생선도 팔면서 옛날의 흥청거렸던 포구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구읍배터에서 월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사람들이 난간에 몰리자 사람 수의 10배가 넘는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배 주변을 한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새우깡에 중독된 갈매기들이다. 새들은 월미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를 계속 돌며 사람들이 던져 주는 과자에 탐닉한다.
배 양편의 승객들을 모두 만날 수 있게 한 방향으로 계속 도는 저들의 방식은 도대체 누가 일러 준 걸까 궁금해졌다. 갈매기와 그렇게 노닐다 보면 배는 금세 월미도에 닿는다. 요즘 부쩍 뜨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그리 멀지 않다.
영종도(인천)= 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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