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마침내 그는 가고 말았다. 우리의 영원한 표상인 그 사람,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하리라고 생각했던 그가 홀연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졸지에 그를 잃은 우리는 깊은 슬픔의 망연자실에 빠져 있다.
평생 동안 신명을 다 바쳐 싸웠던 민주화 투쟁의 그 험난한 길에서 불사조처럼 죽을 고비를 네 번이나 넘겨 생환했던 당신이 아닌가. 총칼의 독재를 이겨낸 그가 결국 시간은 이길 수 없었나보다.
DJ, 그의 영전에 이렇게 약칭으로 부르는 걸 용서해다오. 김대중이란 이름이 금기였던 독재시절 우리는 디스크자키와 혼동되도록 DJ라는 약칭을 사용했었다. 그것은 우리의 암호였고,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우리의 눈은 빛나고, 우리의 가슴은 새로운 전의로 뜨거워지곤 했다. 그의 말처럼, 행동하는 양심이어야 했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었다.
기나긴 압제의 암흑을 뚫고 우리가 고난의 민주화 행진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언제나 불굴의 전위였고, 지하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정부의 수반이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바다 한가운데 던져지기 직전 생환했을 때의 그의 모습, 신군부에 의해 사형수가 되어 죄수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사진으로 본 그 끔직한 모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그랬다. DJ를 전위에 세운 민주화운동은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오래고 지난한 싸움이었다.
죽음과 고문과 옥고를 치르면서, 다친 심신을 이끌고 허위허위 밤 행진을 해 온 그 야만의 시절을,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자신만의 자유가 아닌 민중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어둠 속의 행진을 풍문으로서가 아니라 진실 그대로를 알고 있는가.
자유가 무엇인지,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하던 그 자유가 무엇인지, 공포에 짓눌린 채 이웃사람과 수군거리며 DJ를 말하고, 거부와 증오의 언어를 몰래 나누던, 그 짜릿한 자유를 그대들은 아는가. 왜 민주에는 피가 묻어있는지, 아는가. 아, 개탄스럽게도 그대들은 그대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마치 공기처럼 본래부터 있어 온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에는 속속들이 DJ라는 브랜드가 찍혀 있다.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고, 감히 훼손할 수 없는 성역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애써 부인하고 훼손하려는 세력이 있어 국론을 극단적으로 분할해 놓고 있다.
아, 성경 속의 선지자들이 생각난다. 제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한 선지자들처럼, 살아 생전의 DJ 역시 그러했다. 자국인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그의 업적이 인정받고 칭송받고 있음은 한국사회가 비정상적인 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일 것이다.
병환 중에도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을 호소한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이제 그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잃어버린 십년’이란 구호 속에 역사 퇴행 작업이 공공연히 혹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병석의 당신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한 상심이 그의 병을 더 악화시켰을지도 모른다. 민생이 양극화되고 세론이 양분화되어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그의 지혜로운 목소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에 그는 홀연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슬프다.
다시는 못 볼 우리의 영웅, 우리의 벗! 이제 우리는 그가 떠난 자리에 서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억하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서서 그가 남긴 인권과 민주와 평화를 향한 붉은 정열, 불굴의 투혼을 음미한다. DJ, 우리의 위대한 벗이여. 민족 앞에 영구 불망의 상징으로 남아 우뚝 서 있으시라.
현기영(소설가ㆍ전 작가회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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