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볜(延邊)을 여행했다. 세미나 때문이었다. 중국 동방문학회, 옌볜대학, 인하대학교 BK21 동아시아 한국학 사업단이 공동 주최했고, '동아시아 문학의 상호교류와 지역문학의 생성'이라는 주제였다. 동아시아 각국 문학의 교류 역사와 의의를 따져보고, 서구문학과 구별되면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국가적 한계를 뛰어 넘는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생성은 가능한가를 따져보는 세미나였다.
용정의 포플라 나뭇길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학자들까지 망라한 세미나였다. 중국에서 공부한 한국학자와 한국에서 공부한 중국학자, 중국 한국 일본에서 공부한 일본 학자가 한국말, 중국말을 섞어서 토론을 했다. 적어도 세미나에서는 동아시아 각국의 교류는 막힘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미나 틈틈이 시간을 내서 옌볜 주변을 돌아 봤다. 윤동주의 시비가 있고 일송정 푸른 솔이 있는 용정(龍井) 등지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용정 주변 도로에 늘어선 포플라 나무들이었다. 오래 전엔 한국에서도 흔한 풍경이었다. 대처로 공부하러 가는 아들을 어머니들은 신작로 포플라 나무 옆에서 배웅했다. 비포장 길을 달리는 버스가 일으킨 흙먼지가 하얗게 내려앉도록 어머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포플라 나무가 풍경에서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도로가 새로 닦이면서, 도시가 재개발되면서 포플라 나무는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벚꽃나무 단풍나무 등이 들어섰다. 벚꽃나무처럼 화사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단풍처럼 예쁜 낙엽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봄이면 성가신 꽃가루만 날리는 게 천덕꾸러기가 된 이유인지도 몰랐다.
용정의 포플라 나무들은 아주 익숙한 어릴 적 풍경 같았다. 그래서 용정 출신의 시인 윤동주는 '여름날, 열정의 포플라는, 오려는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고 노래했나 보다. 서울에서 수백km 떨어진 곳에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풍경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벌판이 넓어 바람도 많았고, 밤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별도 많았다.
그 모든 것이 윤동주가 보았던 것들이라 생각하니 더욱 새롭게 보였다. 저 하늘이 윤동주가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바란 하늘이고, 저 별이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그리고 어머니를'불러본 별들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니 간도 반환 소송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일본과 청나라 가 불법적으로 맺은 조약에 의해 중국에 귀속된 간도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간도란 지금의 연변 일대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는 두만강을 넘어가는 것이 불법이었다.
그래도 경작할 땅을 찾는 농민들은 빈번히 두만강을 넘어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그러다 관원에게 걸리면 강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사이에 있는 섬(間島)에 간다고 둘러댔고, 관원들도 눈감아 주었다. 간도란 명칭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일본이 대륙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공식화했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중국 영토이지만 한때 일본이 세운 만주국이 있던 곳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대륙적 상상력의 회복
간도 반환에 관한 주장은 그 현실적 실효성을 떠나 광복과 분단으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대륙적 삶에 대한 환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은 한반도 남쪽에 섬처럼 고립돼 있지만, 오래 전에 간도로, 연해주로, 거기서 육로로 유럽까지 누비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문학의 생성이 곧 동아시아적 삶의 정체성을 바로 보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그것은 대륙적 상상력을 회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문학도, 삶도 그리고 풍경도 서로 교류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을 뛰어 넘어 생각하는 어떤 경지가 필요할 때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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