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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서거/ DJ, 잇단 우파 집회에 "내집 앞이라고 할 말 못하게 하면 쓰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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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서거/ DJ, 잇단 우파 집회에 "내집 앞이라고 할 말 못하게 하면 쓰겠냐"

입력
2009.08.20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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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3년 퇴임 후 동교동 사저로 돌아오자 한 지지자가 진돗개 강아지 2마리를 선물했다. 동물을 좋아하던 김 전 대통령은 무척 반겼다. 하지만 사저 대문 앞에서 보초를 서는 전경들에겐 강아지들이 애물단지였다.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걸핏하면 대문 밑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그때마다 보초는 근무 수칙상 앞을 응시하면서 강아지를 도로 들여보내느라 애를 먹었다.

이런 일이 두세 달 계속되자 비서실에서 강아지들에게 목줄을 달아 마당 한 켠에 묶었다. 이를 본 김 전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내더니 "말 못하는 짐승도 자유롭게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한 법"이라며 "강아지들을 당장 시골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동교동 담당' 정보형사 김모씨가 전한 일화다. 50대 중반의 김 형사는 올해로 14년째 서울 마포구 동교동 일대를 맡아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다.

19일 김 전 대통령의 임시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그는 '진돗개 일화'를 들려주며 "동물을 워낙 아낀 데다가 가택연금, 피랍 등을 몸소 겪으며 자유의 소중함을 절감한 때문 아니겠느냐"고 평했다.

그는 조심스레 말을 가리며 고인의 소탈한 성품을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사저를 경비하는 경찰관들에게 1년에 두 번 특별식을 대접했다. 그는 "그 중 하나가 중복(中伏) 날 삼계탕 회식이었는데, 올해는 열흘 전쯤 입원한 뒤 결국 귀가하시지 못해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손자 뻘인 전경들도 격의 없이 대했는데, 한 번은 평소 즐기던 세발낙지 얘기가 나오자 "낙지는 젓가락에 돌돌 말아 고추장을 푹 찍어 먹는 게 제 맛"이라며 젓가락 들고 신나게 시범을 보여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는 좀더 깊숙한 '첩보'를 들려달라는 요청에는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 것이 정보형사의 철칙"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 형사는 김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계 복귀할 무렵부터 동교동을 담당했는데, 대통령 퇴임 이후가 오히려 힘들었다고 했다. 우파 단체들이 사저 앞에서 '대북 옹호 망언' '무차별적 퍼주기' 등을 주장하며 확성기를 동원한 집회를 자주 열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맞불 집회라도 여는 날엔 주변이 북새통이 됐다.

하루는 그가 "(김 전 대통령이) 심기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묻자 비서관들은 "편치야 않으실 텐데 늘 '나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하고 싶은 말 다했는데 내 집 앞이라고 하고 싶은 말 못하게 하면 쓰겠냐'고 하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직접 얼굴 뵙고 선물 전하겠다"고 떼 쓰는 지지자들을 대할 때도 난감했다고 했다. "선물을 대신 받아 전하기도 했는데 한 할머니가 이희호 여사를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골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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