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떠난 뒤 그 빈자리에서 화합과 소통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19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옛 상도동계 최형우 전 내무장관 등이 찾았다. 한결같이 DJ의 반대쪽에 섰던 인사들이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서영씨 등도 모습을 드러냈다.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는 상황인데도 북한은 이날 고위급 인사로 구성되는 조의 방문단 파견 의사를 전해왔다.
전날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DJ의 라이벌들이 빈소를 찾아 화해 메시지를 전했다.
동서와 남북으로 쪼개진 대한민국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통합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문병 정국' 때 싹트기 시작한 이런 기운은 '조문 정국'을 맞아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DJ 빈소가 용서와 이해를 통해 앙금을 털고 통합을 이끌어내는 용광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DJ의 서거를 화해와 새 정치의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자는 소리가 높다.
정부가 장례 형식과 관련, 가장 높은 예우를 갖추는 '국장'을 수용한 것도 이런 움직임의 하나다. 정부는 당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처럼 국민장을 검토했으나 DJ 유족과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격이 더 높은 국장을 받아들였다.
정부와 여당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빈소와 분향소, 영결식 장소로 국회 광장을 내줬다. 불과 3개월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 분향소 설치를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에 앞서 YS는 지난 주 DJ가 입원 중이던 병원을 찾아 "화해할 때 됐다"고 선언했다. YS는 이어 전날 빈소를 찾아 "나라의 거목이 쓰러졌다"고 애도하는 등 대화합 분위기를 이끌었다.
빈소엔 지역과 이념, 정견을 가리지 않고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새벽 빈소를 찾은 박 전 대통령의 딸 서영씨는 "부친과 반대 입장에 섰던 분이지만, 사진 속 아버지가 지금 갔다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찾았다"고 말했다.
정치학자들은 " 포스트 DJ 시대를 맞은 여야 정치권은 그동안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놓은 벽을 허물고 서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DJ 자체가 우리 사회 갈등의 희생자였다"면서 "시기적으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새 단계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어 정치권 전체가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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