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통신용 반도체 업체인 미국 퀄컴이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택계열에 지분을 투자한다. 퀄컴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의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로, 국내 휴대폰에 장착된 CDMA용 통신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팬택계열(대표이사 부회장 박병엽)은 18일 퀄컴이 제 3자 배정 유상 증자 방식을 통해 7,626만 달러(약 950억원)에 상당하는 지분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된다고 밝혔다. 이번 지분 투자는 팬택이 2006년도에 경영난을 겪으면서 퀄컴에 지급하지 못한 휴대폰용 통신 반도체 기술사용료(로열티)를 출자 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퀄컴은 이달 중 팬택에 1,697만달러, 팬택앤큐리텔에 3,042만달러 등 4,739만달러를 우선 출자 전환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시기는 미정이지만 순차적으로 출자 전환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퀄컴은 팬택 12.55%, 팬택앤큐리텔 12.17%의 지분을 갖게 돼 팬택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이어 2대 주주로 부상한다. 산업은행은 현재 팬택 지분 15.87%, 팬택앤큐리텔 지분 13.92%를 보유하고 있으나 유상 증자에 따른 퀄컴의 지분 참여로 팬택 13.89%, 팬택앤큐리텔 12.23%로 지분이 줄어든다. 대신 퀄컴은 팬택계열의 지분 15% 이상을 소유하지 않고 이사회나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퀄컴, 미래를 위한 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퀄컴의 팬택 지분 투자가 양사 모두에게 좋은 윈윈 전략으로 보고 있다. 우선 팬택에 대한 퀄컴의 지분 투자는 이례적이다. 퀄컴이 휴대폰 제조업체에 지분을 투자한 것은 팬택이 유일하다.
그만큼 퀄컴은 팬택에 대한 투자 가치를 높게 보고 있다. 과거에도 퀄컴은 VK, 기산텔레콤 등 경영난을 겪은 업체로부터 로열티를 못받은 경우가 여러 번 있으나 미수금 처리를 할 망정 이를 지분 투자로 전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팬택은 달랐다. 팬택은 2007년 4월에 경영난으로 기업회생작업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올해 2분기까지 8분기 연속 흑자를 내는 등 휴대폰 제조업체로서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따라서 퀄컴은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퀄컴은 그동안 국내에서 로열티만 받아가고 국내에 기여한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나 이번 투자를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게 됐다. 퀄컴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차영구 퀄컴코리아 사장은 "이번 투자로 국내 업계 발전에 이바지하게 돼 기쁘다"며 "팬택계열이 차별화하고 혁신적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기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퀄컴이 과거에 휴대폰을 직접 만들었던 점을 감안해 다시 휴대폰 제조업에 진출하는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퀄컴 측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팬택, 기술 협력 및 유럽 진출 기대
팬택은 퀄컴의 지분 참여를 통해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됐다. 과거에는 팬택이 퀄컴의 고객사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기술 협력사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 팬택 관계자는 "과거보다 퀄컴의 기술적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며 "휴대폰 공동 기획도 가능할 것"이라며 기술 협력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만큼 국제 신인도가 향상돼 세계 시장 확대에도 유리할 전망이다. 팬택은 내년부터 해외에서 공격 경영을 펼칠 예정이다. 현재 미국, 일본에서 선전하고 있으나 아직 유럽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따라서 이번 퀄컴 투자로 국제 신인도가 향상되면 내년의 유럽 진출을 노리는 팬택으로서는 한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팬택 관계자는 "퀄컴의 투자 만큼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국제적 평판도 높아질 것"이라며 "덩달아 해외 확대 전략도 상당 부분 힘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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